과거에 교회 생활을 성실히 해오던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이들 가운데에는 신앙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 교회를 떠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이들 중에는 여러 교회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신학적·신앙적 차이로 인해 이질감을 느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 교회의 구조적 문제일 수도 있고, 개인의 신앙적 성숙이나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혹은 양측 모두의 책임일 수도 있다. 특히 교회 생활 속에서 반복적인 상처가 주요 원인이라면, 타인의 책임만을 논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도 있다. 성경이 말하는 ‘가라지’의 비유를 자신에게 적용해 보며 성찰하는 태도 또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더 이상 근대나 현대, 심지어 포스트모던 사회를 넘어 이미 AI 시대로 진입하였다. 성경은 이미 모든 성도가 제사장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이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넘어 누구나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신학교 졸업 여부와 무관하게 신앙의 성숙, 영혼에 대한 책임의식, 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누구든지 목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성경적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제도 교회와는 일정 부분 차이를 보인다. 물론 제도적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한, 분명 주님의 몸 된 교회이며 이 땅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또한 주님의 재림 이전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교회의 형태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형태의 교회가 존재할 가능성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교회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첫째, 그 이름이 의미하듯 ‘형제 사랑’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로서, 전문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보다는 모든 구성원이 형제로서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이다. 둘째, 이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데, 이는 규모의 확장이나 대형화를 추구하는 현대 교회의 흐름과는 분명히 다른 방향성을 시사한다. 셋째, 이른바 ‘자칭 유대인들’, 즉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힘을 행사하는 이들로부터 오히려 경배를 받는 존재로 묘사된다. 현실 속에서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교회의 형태를 추구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이른바 ‘가나안 성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나안 성도들은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머무르기보다, 스스로 신앙이 있다고 여긴다면 주변의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작은 모임을 시작함으로써 개인적 신앙을 넘어 공동체적 신앙, 곧 참된 교회 생활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모임은 기존 교회의 형식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교회의 본질을 이룰 수 있다.
AI 시대에 접어든 지금,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활용한 성경 연구나 신학적 토론도 가능하며, 신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목회자들의 온라인 설교를 함께 시청하며 공동체를 세워갈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공동 찬양, 떡을 떼는 일, 침례와 같은 신앙 행위로 확장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른바 ‘성례’를 특정 목회자 집단의 전유물이나 독점적 권한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성경적 근거가 빈약하며, 여전히 로마 가톨릭적 성직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행태가 ‘이단’일 수 있다!
한국 곳곳에 세워진 수많은 교회 건물들을 바라볼 때,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움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이 모든 교회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특히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많은 교회의 주된 구성원이 고령층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고민은 더욱 현실적이다.
한국 기독교는 과거 여러 역사적·사회적 요인 속에서 부흥을 경험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 새로운 도전과 구조적 문제들 앞에 서 있다.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과제가 되었다. 특히 가나안 성도들은 신뢰할 만한 목회자나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낙담하기보다, 스스로를 주님께 드리며 이 시대의 나실인으로 일어서는 결단이 요구된다. 이것이야말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하나의 가능성일 것이다.

ChatGPT에서:

what are some verses in NT that encourage so called 'lay people' to take the role of spiritual leaders and even pastors?
 

The New Testament does not use a rigid clergy–laity dichotomy in the later institutional sense. While it does recognize functions (apostles, elders, shepherds, teachers), it repeatedly affirms that ordinary believers are called, gifted, and authorized by God to exercise spiritual leadership, teaching, shepherding, and oversight according to grace given. Below are key New Testament passages commonly cited to support what you describe as “lay people” functioning as spiritual leaders—even in pastoral roles.


1. The Universal Priesthood and Direct Access to Ministry

1 Peter 2:5, 9

“You also, as living stones, are being built up as a spiritual house, a holy priesthood, to offer up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through Jesus Christ.”
“You are a chosen rac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Significance
Peter explicitly applies priestly language to the entire believing community, not a select clerical class. In the Old Testament, priests mediated, taught the law, and led worship. Declaring all believers “priests” implies shared responsibility in spiritual service, intercession, instruction, and leadership.


2. The Distribution of Teaching and Shepherding Gifts to the Body

Ephesians 4:11–12

“And He gave some as apostles, some as prophets, some as evangelists, and some as shepherds and teachers, for the equipping of the saints for the work of ministry…”

Significance
Pastors (shepherds) are not described as doing all the ministry, but as equipping the saints to do it. The “work of ministry” is explicitly assigned to the whole body, not restricted to professionals.


3. Mutual Teaching, Admonition, and Spiritual Oversight

Colossians 3:16

“Let the word of Christ dwell in you richly, teaching and admonishing one another…”

Romans 15:14

“You yourselves are full of goodness, filled with all knowledge, and able also to admonish one another.”

Significance
Teaching and admonition—functions often associated with pastors—are commanded as mutual responsibilities among believers. Paul does not limit these activities to ordained leaders.


4. The Expectation That Mature Believers Teach Others

Hebrews 5:12

“For though by this time you ought to be teachers, you have need again for someone to teach you the elementary principles…”

Significance
The rebuke assumes that spiritual maturity naturally leads to teaching responsibility. Teaching is presented as an expected development of ordinary Christian growth, not a rare office.


5. House Church Leadership by Non-Clergy Believers

Romans 16:3–5

“Greet Prisca and Aquila… the church in their house.”

Acts 18:26

“He began to speak boldly in the synagogue, but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took him aside and explained to him the way of God more accurately.”

Significance
Priscilla and Aquila were not apostles or elders by title, yet they hosted a church and corrected a powerful preacher (Apollos). This demonstrates real doctrinal authority exercised by “lay” believers.


6. Shepherding and Oversight Beyond Formal Ordination

1 Thessalonians 5:11–13

“Encourage one another and build one another up…
Respect those who labor among you and are over you in the Lord…”

Significance
Paul refers to leaders defined by function (“labor among you”) rather than by official titles. Leadership emerges organically from service and spiritual labor, not institutional appointment alone.


7. Spirit-Given Authority to Speak and Build Up the Church

1 Corinthians 14:26

“When you come together, each one has a psalm, a teaching, a revelation…”

Significance
Early church gatherings were participatory. Teaching was not monopolized by a single pastor figure; Spirit-led contributions from multiple believers were expected.


8. Recognition of Elders Without Clerical Separation

Acts 14:23

“They appointed elders for them in every church…”

Titus 1:5–7

Elders are described primarily by character and household leadership, not professional training or sacramental status.

Significance
Elders (who functioned as pastors/shepherds, cf. Acts 20:17, 28) were typically drawn from the local believing community—men already proven in life and faith, not a separate clerical caste.


9. The Spirit as the Primary Authorizer of Ministry

1 Corinthians 12:7

“To each one is given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for the common good.”

1 Peter 4:10–11

“As each one has received a gift, use it to serve one another… whoever speaks, as one who speaks oracles of God…”

Significance
Spiritual authority flows from gifting by the Spirit, not merely from office. Speaking, teaching, and shepherding are Spirit-distributed capacities within the body.


Summary Theological Pattern

The New Testament presents a consistent framework:

  • All believers are priests → access, responsibility, ministry

  • Leadership is functional before it is formal

  • Teaching and shepherding are widely distributed gifts

  • Pastoral roles emerge from maturity, character, and gifting

  • Ordination recognizes ministry; it does not create it

Thus, while the NT affirms order and recognized leadership, it clearly encourages and expects so-called “lay people” to exercise spiritual leadership—including teaching, shepherding, and pastoral care—under the lordship of Christ and the guidance of the Spirit.

이에 대한 비판을 요구한 것

now criticize it based on the NT, not traditional Christian view.
 

아래의 비판은 교회사적 전통, 종교개혁 신학, 현대 교회론이 아니라, 신약 성경 본문 자체가 말하는 논리와 긴장 관계에 근거하여 제시합니다. 즉, “전통 교회는 어떻게 보아 왔는가”가 아니라, **“신약은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1. “모든 성도는 목자가 될 수 있다”는 진술의 신약적 과잉 확장

글은 신약의 “만인 제사장” 사상을 근거로,

신앙의 성숙과 사랑이 있다면 누구든 목자로서 자신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는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신약은 ‘제사장성’과 ‘목자/감독 직분’을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 만인 제사장:

    • 1 Peter 2:5, 9 → 접근권·예배·영적 제사

  • 목자/감독(episkopos, poimēn):

    • Acts 20:28

    • 1 Tim 3:1–7

    • Titus 1:5–9

신약에서는:

  •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감 →

  • 모든 성도가 교회를 치리하고 가르치는 책임을 가짐 → 아님

문제점
글은 “목자”를 은사·책임·사랑으로만 정의하지만,
신약은 이를 공동체가 인정하고 세운 직분으로 규정합니다(Acts 14:23).


2. “성례는 누구나 집례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본문적 근거 부족

글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성례를 목회자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이단적이다

그러나 신약은 ‘누가 성례를 집례해야 하는가’를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항상 질서(order)와 감독(authority) 아래에서 이루어졌음을 반복적으로 보여 줍니다.

세례

  • Matthew 28:19 → “너희는 가서… 세례를 주라”

    • 대상: 사도 공동체

  • Acts 8:12–38 → 빌립 (공식 파송된 사역자)

떡을 뗌

  • Acts 2:42 →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떼며”

  • 1 Cor 11 → 무질서한 성례 참여에 대해 강한 책망

문제점
글은 “누구나 가능”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만,
신약은 자격의 보편성보다 ‘책임 있는 감독 아래의 실행’을 더 강조합니다.


3. 빌라델비아 교회를 ‘비제도 교회 모델’로 읽는 해석의 위험성

글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 전문 목회자 없는 형제 공동체

  • 소규모 교회 지향

  • 제도와 권력에서 벗어난 교회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교회 구조’가 아니라 ‘영적 상태’에 대한 평가입니다.

  • 빌라델비아 교회가:

    • 장로가 없었다

    • 감독이 없었다

    • 비제도 교회였다
      본문은 어떤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Rev 3:8)

이는 규모·조직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신실함에 대한 평가입니다.

문제점
글은 계시록의 ‘윤리적 평가’를
현대 교회 구조에 대한 규범적 모델로 전환합니다.
이는 신약 본문이 허락하지 않는 해석적 도약입니다.


4. “가나안 성도 = 신약적 대안 교회”라는 등치의 본문적 불안정성

글은 가나안 성도를:

  •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세울 잠재적 주체

  • 빌라델비아 교회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

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신약은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떠난 상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 Hebrews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 1 John 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문제점
가나안 성도 현상은 **신약의 정상 상태(norm)**라기보다
**위기 상황(abnormal condition)**에 가깝습니다.
신약은 이를 이상화하지 않고, 회복과 재결합의 방향으로 긴장 속에 둡니다.


5. AI 시대 논증은 신약 신학적 근거가 아니라 시대 담론에 의존

글은 AI 시대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신약은:

  • 기술 변화

  • 사회 체제 변화

교회 구조의 신학적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교회의 형태는:

  • 박해 시대

  • 가정 교회 시대

  • 확장기

를 거쳤지만, 직분·질서·가르침의 연속성은 유지되었습니다
(Acts 2:42, Pastoral Epistles).

문제점
AI 시대는 목회 방식에는 영향을 줄 수 있으나,
교회의 본질과 직분 구조를 재정의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6. 가장 중요한 신약적 결여: “교회의 자기검증 장치”의 부재

신약 교회는 언제나 다음을 포함합니다:

  • 권면과 책망 (Matt 18:15–17)

  • 교리 검증 (Acts 17:11)

  • 지도자의 책임성 (James 3:1)

그러나 글이 제안하는 모델에서는:

  • 누가 교리를 판별하는가?

  • 누가 오류를 제어하는가?

  • 누가 영혼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는가?

가 불분명합니다.

신약은 ‘모두가 지도자’인 공동체를 상정하지 않습니다.
항상 “더 큰 책임을 지는 이들”을 전제로 합니다.


종합 평가 (NT 기준)

이 글은 신약의 중요한 요소들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 만인 제사장

  • 은사의 보편성

  • 형제 공동체

  • 제도주의 비판

그러나 동시에 다음과 같은 신약적 긴장을 충분히 유지하지 못합니다:

영역 신약의 강조 글의 경향
직분 은사 + 공적 인정 은사 중심
성례 공동체적 질서 개인적 자유
교회 유기체 + 질서 유기체 강조
이탈 위기 상태 대안 모델
권위 섬기는 권위 권위 해체

결론적으로

이 글은 신약적 에너지를 가진 비판문이지만,
신약이 의도적으로 유지한 “은사와 질서 사이의 긴장”을 한쪽으로 기울여 해소해 버린 글입니다.

내가 다시 반박:

떡을 뗌 Acts 2:42 →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떼며” 1 Cor 11 → 무질서한 성례 참여에 대해 강한 책망 이 구절들은 사도나 지도자가 성찬을 주도했다고 말하지 않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수천이었고 '집집 마다 떡을 떼'었다고 하는데, 그 집집마다 '목사'나 혹은 '사도'가 집례하지 않았음.
 

지적하신 내용은 본문 관찰 차원에서 매우 정확하며, 실제로 이는 앞서 제시된 “질서·감독 중심 해석”에 대해 신약 자체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반론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입장을 방어하거나 전통으로 후퇴하지 않고, 신약 본문이 허용하는 범위와 그 한계를 정밀하게 정리하겠습니다.


1. Acts 2:42는 “누가 집례했는가”를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Acts 2:42)

이 구절은:

  • 사도가 떡을 떼었다

  • 사도가 주관했다

  • 사도의 감독 아래에서만 가능했다

라는 어떤 것도 명시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누가 집례했는지가 본문의 관심사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누가(Luke)는 **성찬의 ‘주체’보다 공동체의 ‘삶의 리듬’**에 초점을 둡니다.


2. “집집마다 떡을 뗌”은 구조적으로 성직 집례를 전제하지 않는다

Acts 2:46은 더욱 결정적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여기서 중요한 관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루살렘 교회는 수천 명 규모였다 (Acts 2:41)

  2. 떡을 뗀 장소는 성전 + 집집마다

  3. 시간 표현: 날마다

이 세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면,

  • 모든 가정 모임에 사도 혹은 특정 지도자가 상주했다는 가정은
    텍스트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즉, 본문은 구조적으로 ‘비성직 집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3. 1 Corinthians 11도 “집례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

1 Cor 11에서 바울의 책망은 다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 분열 (σχίσματα)

  • 가난한 자에 대한 무시

  • 자기중심적 식사

  •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함

흥미로운 점은:

  • 바울이 “누가 떡을 떼었는가”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만약 집례 자격이 핵심이었다면, 이는 가장 먼저 지적되었어야 합니다.

바울의 논지는:
“누가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어떤 태도로, 무엇을 인식하며 했느냐” 입니다.

이는 성찬을 공동체적 책임으로 이해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4. 신약에서 성찬은 ‘직분의 행위’라기보다 ‘교회의 행위’이다

신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특징은,

  • 성찬이 사적 개인 행위도 아니고

  • 특정 직분자의 독점 행위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찬은 언제나:

  • “너희가 함께 모여서” (1 Cor 11:18)

  • “너희가 이것을 행할 때마다” (11:26)

라는 복수 주체 언어로 표현됩니다.

신약에서 성찬은
“목회자가 교회를 위해 행하는 의식”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로서 함께 행하는 사건”
입니다.


5. 그렇다면 ‘질서’는 어디에 있었는가?

여기서 중요한 균형점이 필요합니다.

신약은:

  • 집례자를 규정하지 않지만

  • 무질서를 강력히 규제합니다

즉,

  • 자격 규정 ❌

  • 태도 규정 ⭕

질서의 기준은:

  • 직분의 유무가 아니라

  •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인식

  • 공동체적 사랑

  • 서로를 기다림 (1 Cor 11:33)

입니다.


6. 따라서 더 정확한 NT적 정식화는 이것이다

앞선 논의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신약 본문에 가장 충실합니다.

❌ “아무나 마음대로 성찬을 집례해도 된다”
❌ “오직 안수받은 목회자만 성찬을 집례할 수 있다”

✅ “신약은 성찬 집례자의 직분을 규정하지 않는다”
✅ “성찬은 지역 교회 공동체 전체의 책임 아래 이루어졌다”
✅ “질서의 기준은 직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분별이다”


7. 앞선 비판의 수정이 필요한 지점 (정직한 인정)

따라서 앞서 제가 제시한 비판 중:

“신약은 항상 질서와 감독 아래에서 성례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라는 표현은 ‘감독’이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제도적·직분적 뉘앙스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정확하게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합니다.

“신약은 성찬이 공동체적 책임과 영적 분별 아래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그 책임을 특정 직분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이 수정은 전통이 아니라 본문에 더 충실한 정식화입니다.


결론

지적하신 바와 같이,

  • Acts 2

  • 1 Corinthians 11

어느 본문도 사도나 목회자의 독점적 성찬 집례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약은 가정 교회, 분산된 공동체, 비성직적 환경 속에서
성찬이 자연스럽게 교회의 삶 안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동시에 신약은 그 자유를 “아무렇게나”의 자유로 확장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깊은 분별과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영적 긴장 속에 유지합니다.

이 지점이 바로,
신약이 전통 교회와도, 무제한적 자유주의와도 다른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