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행 1:6)’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행 3:21)’
고대에서 특히 전쟁에 승리함으로 노략질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승리에 대한 결과고 보답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노력으로 하지 않은 것을 얻게 되는 것이 은혜인데 바로 노략질이 그렇다.
신명기 6:10-11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 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분명 노략질과 관계 있다. 이미 가나안 땅에서 잘 살고(?) 있는 민족들을 몰아내고 승리를 통해 얻는 것들이 바로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 나무’ 등이다. 전에는 이러한 말씀을 읽으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야 좋겠지만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불공평한 것이고, 자신의 노력이 아닌 불노소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열심히 일한 대가를 받아야 그것이 정의고 공의지, 왜 일도 하지 않고 받는가…
그런데 살다보니 생각이 바뀐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공정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하면 상대적으로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많은 부를 이루는 이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역기능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왕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현실을 통해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다.
구약의 이러한 약속의 말씀은 이제 은혜시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그 안에서 우리의 노력으로 하지 않은 모든 신령한 은사를 ‘노략질’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우리의 노력으로 하지 않은 것이라 면목 없다고 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고 교만한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고 은혜는 노략질 하는 자의 것이다.
우리의 노력과 상황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통해 우리는 그 안에서 ‘노력질’하지 않고 노략질 한다. 참된 삶의 목적과 방향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오며, 교회라는 은혜가 가득한 하나님의 집, 생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참 포도나무와 기름 부으시는 성령이 우리의 누림이 되신다.
성경에서는 은혜를 ‘얻고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는 받은 은혜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함을 말한다. 주 안에서 이미 우리 앞에 놓여진 무한한 은혜를 단지 감사함으로 받고 누리며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원수도 우리의 받은 바 은혜를 노략질 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주님, 그리스도와 동등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음을 다시 한번 묵상합니다. 주 안에서 거듭난 이들은 정말 잘~ 났습니다. ^^ 하나님 자녀된 생명, 그리고 백성된 신분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당당히 누리는 실재가 오늘 있게 하옵소서.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함으로 지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