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은 우선 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병에서 고침 받은 후 나아만의 첫째 고백이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였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그가 한 말에 순종함으로 나아만은 나음을 입었지만, 나아만은 분명히 엘리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았고 그래서 참 하나님을 만났다.  두번째 특징은 감사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선물로 가져왔던 것이었고 이제 나음을 입었기 때문에 엘리사에게 가져온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갈 6:6에서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말씀하며 ‘모든 좋은 것’이 영적으로 좋은 것 혹은 배운 바 좋은 것들을 함께 하라는 말도 될 수 있지만, 육신적으로 필요한 것을 나누는 문제도 포함된다.  세번째 특징은 그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나아만은 어쩔 수 없이 림몬 신당에서 몸을 굽히는 것에 대해 용납을 구한다.  몸은 굽히지만 경배의 몸짓이나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그 현실에서의 어려움에 대해 자비를 구한다.

살면서 현실에서 닥쳐오는 많은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 괴로울 때가 있다.  물론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이익을 보는 것이나 그 외 여러 모양의 죄에 연류되는 것은 분명 악한 것이고 단호히 거절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다른 직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하지만,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타협 비스무리한 태도를 취하게 될 때도 있다.  엘에이 시 공무원으로 일하며 정말이지 너무 감사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든 시공무원은 소위 LGBT (레즈비언, 게이, 양성욕자, 성전환자) 등에 대해 ‘법적’으로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야하기 때문에 ‘완전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사인을 했었다.  ‘완전 동의’라는 것은 ‘법적 동등’ 혹은 ‘동일한 인권’에 대해서는 분명 동의하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지만, 성경적으로 틀린 것에 대해 틀렸기 때문에 사인을 할 수 없다 라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림몬 신당에서 몸을 굽히는 경험이었다.

사실 삶의 여러 면에서 알게 모르게 림몬 앞에 몸을 굽힐 때가 많다.  전쟁과 환경 오염을 부추키고 동성애 확산을 조장하는 여러 기업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별 생각없이 그들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계속해서 이용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소위 '자유함'을 누릴 수  있지만, 정말 구원받았다면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하나님 앞에  아뢰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 위와 같다면,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도 있다.  엘리사는 그의 받은 영감이 원래 그의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임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아만이 가져온 것에 대해 일절 손을 대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텐데, 아마도 하나님께서 나아만의 경우에 대해서는 손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26절에서 ‘지금이 어찌… 때이냐’ 라고 한 것 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소위 ‘주의 종’은 돈 문제에 대해서 정말 깨끗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뒤를 이을 것 같은 게하시 같이 저주받은 인물이 될 수 있다.  게하시는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했는데 자신의 욕심을 위해 ‘여호와’를 들먹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 받은 바 생명에 의하면 주의 자녀이고, 섬기는 면에서는 주의 종임을 생각할 때, 온전히 주만 섬기는 문제,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문제, 그리고 물질을 바르게 쓰는 문제에 대해 주님 앞에 부족함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림몬 앞에 몸을 굽히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지만, 맘몬에게는 절하지 않게 하소서.  돈은 영적인 문제임을 고백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압니다.  귀한 청지기의 삶을 추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