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세상 사람들을 신자와 비신자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이들로 생각할 때가 있는데, 오늘 말씀의 나아만을 보니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신 당신의 교회에 가장 초점을 맞추시지만, 그렇다고 그 외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해 완전히 관계를 끊은 분이 아니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구속사가 얼마나 작아지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온 우주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나아만은 이스라엘과는 관계 없지만 1절은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고 하며 나아만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던 때 조차도 그를 통해 역사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현재 세상을 살고 있는 많은 영향력 있고 유력한 인물들 중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도 역시 하나님께서 쓰고 계시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말씀한다 (롬 13:1)  하나님의 은혜는 믿는 이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 동성욕자들에게 까지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나나 동성욕자들이나 도둑이나 강도, 살인자 모든 이들이 죄 안에서 출생했기에 나병 환자처럼 고통과 더러움에 쩌들고 치부를 가리려고 한다.  차이가 있다면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깨닫고 고침받으려는 바람으로 주께 나오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  죄 속에서 죽든지 아니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안에서 영생을 누리든지 둘 중 하나다.

나아만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 나오자 황당해 하며 분해한다.  하지만 그의 종들이 더 힘든 요구가 있더라고 하지 않겠느냐며 말할 때 그는 순종한다.  사실 한번 해 보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치유 받는 방법이 단지 '요단 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너무 쉬운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나아만은 일곱 번 씻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을 것 같다. 일곱 번 째 일어날 때 까지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하나님은 치유와 영생의 길을 우리에게 보이셨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음 곧 영접하는 것이다.  얼마나 쉽고 간단한 방법인가.  물론 ‘일곱 번’ 씻는 문제가 있기에 ‘그리 쉽진 않’을 수도 있다.  일곱 번 채우지 못하고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엘리사가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에서 끝나지 않고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성경도 ‘주 예수를 믿으라’로 끝나지 않고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는 약속을 분명히 한다.  또 ‘주의 이름을 불러라’ 는 주문만 있지 않고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고 약속한다.

주님, 나아만의 치유가 오늘 나에게 있기 원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도 되지 않던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그 안에서 해방받던 그 기쁨을 오늘 새롭게 누리기 원합니다.  세상에서 살며 육신의 약함으로, 또 생각이 오염됨으로 죄들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손길이 나를 깨끗게 하심을 이시간 누리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