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아무거나 먹어서 탈이 나는 경우가 있다.  먹지 못할 것을 입에 넣기도 하고 상한 음식을 줏어 먹기도 한다.  먹는 문제가 무서운 것은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와 하나가 되기 때문인데,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말도 있다 (What you eat is what you are).  물론 몸이 받지 않으면 토해내지만, 육신의 먹는 문제가 지적 또 영적인 것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좋은 책을 읽으면 그것이 내가 되어 훌륭한 인격을 갖추게 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저속한 책들을 접하게 되면 나의 생각과 인격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악한 영을 접하면 아무리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라도 매우 처참한 삶을 살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배고픔을 느껴서 말씀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여기저기서 잘못된 것을 접하고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다.  예수님의 신성을 교묘하게 부인하는 것이나 반대로 인성을 부인하는 등의 잘못된 것을 분별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데, 마치 독초를 모르고 가져와 국에 섞은 무지한 제자와 같다.  

엘리사는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라는 말이 마치 이러한 경우에는 가루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말 같이 들린다.  분별없이 무심코 접했던 잘못된 ‘영적’인 것들에 대해 당연히 쓸 수 있는 것은 것은 오직 말씀 가루 밖에는 없다.  엘리사가 쓴 가루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냥 낱알 혹은 알갱이 같은 단단한, 즉 그냥 문자로서의 말씀을 넘어 곱게 갈려서 가루로 된, 큐티를 통해, 묵상을 통해 되뇌이고 읖조리는, 마치 베뢰아 사람처럼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 가루같이 만든, 그 어떠한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다시 보니 과학적으로 보면 숯가루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말씀은 말씀으로 푼다는 말이 외부에서 보면 기독교의 한계로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성경의 원리는 매우 분명해서 그 안에서 분명 답을 찾을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면 마치 선지자의 제자처럼 부지중에 독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쓰는데 옆에 직장 동료가 어제 읽었던 말씀을 나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의 말씀을 나누며 이 얘기 저 얘기 한다.  들으면서 내가 정말 과연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다시 한번 돌아본다.  사역은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고 열매를 맺는 것이라는 매우 간단하고 단순한 것을 많이 놓치게 된다.  단기 선교 역시 일을 많이 벌이고 예산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구원얻고 또 그러한 사역을 통해 함께 하는 이들 가운데 신앙과 인격의 열매가 맺혀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 것이 사역의 목적이 되고 있었나...

‘나누는 것’은 나에게 무언가 남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한 엘리사의 말 처럼 백 명의 제자들이 먹고 남았다.  하나님께서는 보통 정확하게 일하시는데, 무언가 남기실 때는 목적이 있다.  즉 나누기를 원하시는 거다.  그래서 또, 나눈다. ^^  돈은 보통 나눌만큼 남지 않지만, 말씀은 풍성하다.  그래서 즐겁다. ㅎㅎ

주님, 말씀의 가루로 나와 공동체 안의 독이 사라지고, 또 힘을 얻고, 받은 바 남은 것을 나누는 귀하고 아름다운 삶이 우리 모든 믿는 이들 가운데 있게 하시고, 주마나마와 함께 하는 주님의 자녀들 중 아직 어려서 잘 못한다고 혹은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나누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하나 하나 예언할 수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나누게 하시며, 특히 다락방 모든 형제 자매들이 적극적으로 서로 나눌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