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당도 나름대로 그 역할과 쓰임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구약 여러 곳 특히 성전이 지어진 후에 산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성전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하나의 성전을 허락하셨지만 사람들은 편한대로 사는 지역에 편재한 산당에 가서 분향한 것은, 은혜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여러 이름과 구실로 그리스도를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열심이 그리스도를 대체하고 우리의 사역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대체하며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분열에서 오고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온다. 여로보암이 가져온 분열과 아합의 죄에 대한 소극적인 모습, 그리고 이세벨의 죄에 대한 적극적인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본다.
열왕기는 말 그대로 Kings 즉 여러 임금들에 대한 기록이다. 히브리어 역시 멜라킴 즉 ‘왕들’이라는 뜻이다. 왕들에 대한 기록이기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책은 ‘평범’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평범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가 몇 개 있는데 하나는 ordinary 라는 단어고 또 하나는 common이라는 단어다. 그런데 우리 말의 ‘평범’은 사실 다른 단어인 mediocrity에 더 가깝다. 즉 뛰어난 인물에 비해 그냥 보통 사람이라는 뜻인데, 부정적으로 쓰인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라는 뜻의 Ordinary 에 비해 common이라는 말이 좀 문제 있는 말이다. 좋은 뜻으로 쓰이면 ‘균등, 평등, 연합’ 등의 뜻이 있지만, 또 다른 뜻 하나는 ‘유치하고 저급한, 격에 미치지 못하는’ 즉 ‘세속적’ 이라는 뜻도 있다. 특히 성경적으로 볼 때 common 한 것은 저급하고 하나님의 속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열왕의 삶이 일반인들에 비해 특별하고 특출난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좇아 행하지 않을 때 그들의 삶은 지극히 평범 common한 삶을 살았다는 평을 받는다.
평범한 삶을 살기를 꿈꾼다는 것은 지금 나 자신의 삶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 평범이 ‘특출난’ 혹은 ‘돌출, 돌발적인’ 것이 아니고 ‘저급한’ 것이라면 평범을 꿈꾸지 않아도 된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결코 평범할 수 없다. 우리는 죄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지만, 주님의 은혜로 구속함 (구해서 속했다, redeem)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성도’ 즉 ‘성인’으로 불리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랄 말도 안되는 목표가 있고, 앞으로 하나님을 ‘모습 그대로 볼’ 것 (요일 3:2)임을 생각할 때, 평범함을 꿈꿀 수도 없고 꿈꿔서도 안된다. 오직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
(이제 나눔은 좀 줄여서 한 문단으로 하려고 했는데 오늘도 길어지네… ㅋ)
주님, 이 시대를 왕으로 살아가는 제가 주님 앞에 바로 서게 하소서. 제 마음대로 안된다고 분열을 꿈꾸지 말게 하시고, 주님께 붙어 있게 하소서. 죄에 대한 여러가지 소극적인 태도를 멈춰 적극적으로 죄의 모습들을 멀리하고 제거하게 하시며, 적극적으로 죄를 짓는 말과 생각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적용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