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20에는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고 말씀한다. 야고보는 주님의 친동생으로서 어려서 부터 곁에서 주님을 누구보더 더 가까이 봐 온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님께서 그리스도임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육신의 형님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그리고 영광의 주로 고백하는데 (2:1),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는 주님께서 성내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주님께서 화 내셨던 것 같은 일은 몇 개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에 대해 하신 것들을 보면 화를 내셨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잘 읽어 보면 화를 내셨다는 기록은 없다. 화나 분이 가득해서 짜증을 내며 사람들을 쫓아내고 환전판을 뒤집어 엎으신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위엄을 가지고 그들에게 똑바로 명령하셨지 불량배처럼 깽판을 놓으신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예로는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을 하신 몇 번의 사건인데, 그 때에도 분을 품고 그런 욕을 하셨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 화를 내면서 말하는 예수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 우셨다는 말씀은 있어도 화를 냈다는 말씀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람들은 왜 화를 낼까? 왜 짜증을 낼까? 오늘 말씀 43절을 보니 아합은 선지자의 말 때문에 ‘근심하고 답답하’게 됐는데, 답답하다는 것은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는 뜻이다. 선지자까지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고에 대해 회개하지 않고 혼자 끙끙앓고 화를 품는다. 결국 화를 내고 짜증 내는 이유는 자기 뜻대로 혹은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아내가 내 자녀들이 내 뜻대로 하질 않으면 짜증이 난다. 화가 난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난다. 교회나 직장에서 일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특히 내가 개입된 사건이면 더욱 그렇다.
화를 내는 문제에 대해 전에는 화를 참고 마음에 억누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화가 날 때는 그 때 마다 발산해서 푸는 것이 좋다고 했었지만, 요즘 들어 화를 내게 되면 화 내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려서 나중에는 주체하기 힘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믿는 이들에게 허락된 화는 분을 낼 수 있으나 죄를 짓지 않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것이다 (엡 4:26). 즉 해가 지도록 분을 품는 일은 자신의 건강에도 나쁠 뿐더러,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이 기뻐하지시 않는 일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믿는 이들에게 허락된 화는 ‘거룩한 성냄’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 지지 않고 아직도 불의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룩한 화를 내어야 하고, 내 자신의 죄의 문제에 대해 거룩한 분을 품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주님의 몸된 모습을 떠나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는 현상에 대해 분을 품어야 하고 교회 내에서 자정의 능력이 사라진 것에 대해 거룩하게 성내야 한다. 그래서 결국 화를 내기 전에 나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정말 화낼 자격이 있는가? 내가 내는 화는 정당하고 거룩한 것인가?
아이들에게 매를 들 때 많은 경우, 아니 거의 대부분 화를 내는 것을 동반한다. 감정적으로 매질을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 결코 교육적이 아닐 뿐더러, 나중에는 교훈보다는 상처로 남게 되고, 배울 것을 배우지 못하며 관계만 나빠지게 된다. 한 번은 감정 없이 냉철하게 매를 든 적이 있었는데 그 날 저녁 오히려 관계가 더 좋아지고 아이들이 스스로 잘 한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정말이지 사람의 성내는 것이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화를 자주 내는 직장 상사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짜증 내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마음을 닫게 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지 화를 내거나 짜증 내는 것이 아님을 다시 보게 된다. 고전 13:5은 말씀한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또 약 1:19도 말씀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오늘 나의 분냄을 모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 놓기 원한다. 오직 회개하기 원한다.
주님, 내 자신의 죄는 물론이지만 남들의 죄에 대해서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게 하소서. 모세가 그랬고 다니엘이 그랬던 것 같이, 바울이 그랬던 것 같이, 형제들의 죄와 허물을 내것 처럼 여기고 그들을 위해 주께 아뢰게 하소서. 정작 의롭지 못한 내가 화를 냄을 봅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게 하시고 주님의 온유하시고 온화하심을 배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