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신약에 와서 믿음은 ‘하나님 나라’ 혹은 ‘천국’의 개념이 중요해 짐으로 보다 단체적인 성격을 띤다.  주님께서 처음 선포하신 말씀이 ‘나를 믿고 죽어서 천당가라’가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라는 말씀이었다.  즉 이 땅에 임하는 주님의 왕국을 말씀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우리 각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을 바꿔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단체적 신앙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많이 놓치고 있는 이유는 복음이 한국에 소개될 때 개인적 성향이 강한 서구적 학문을 바탕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원래 믿음은 개인적인 것 보다는 단체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다.  누가 ‘이 세상에 오직 나 한 사람의 죄인만 있었어도 주님은 나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그것이 물론 맞는 말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주님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셨다.

개인적인 믿음만 중요했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드실 필요도 없었다.  신약 시대에는 교회로 모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좋은 신앙 서적을 읽거나 설교를 듣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교회로 모인다.

이렇게 단체적인 면의 신앙은 정말 중요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믿음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데 대한 확신은 개인적으로 수립이 되어야 한다.  내가 큰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좋은 설교를 듣고 좋은 교우들과 교제하며 그것들이 마치 나의 개인적인 믿음인양 속을 때가 있다.  내가 온전히 마음 가운데 개인적으로 세워진 확신이 우선적으로 없다면 나에게 있어 단체적인 것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다고 말하자 엘리야는 여호와의 단 한 명 선지자인 몸으로 의기소침할 수 있었지만 당당히 자신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떠난 아합과 그의 아버지 집이라고 정정한다.  그에게는 주님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이 있었다.  그는 여호와를 알았고 그와 교제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믿음은 주님을 영접하고 교제하는 것에 있다.  과거 가부장적 사회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개종하게 되면 모든 가족이 종교를 바꾸게 되는 것으로 여겼지만 각 일원의 개인적인 믿음의 상태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하고 구원얻고 주님과 일대일로 교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시험의 때에 나타난다.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자신 외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지 못한다.  많은 경우 왜 교회에서 나의 어려움에 대해 외면하는가 또는 왜 믿는 형제 자매들은 도와 주지 않는가 라고 푸념할 수 있지만, 내 경험으로 보니 그러한 바람이 맞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선교지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단지 측은한 마음으로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때가 그 사람의 믿음이 확인되고 성장할 수 있는 시험의 때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시험의 때를 통과하면서 신앙이 자라는데, 시험의 때는 나 외에는 그 누구도 없는 것 같다.  부모도 별 도움이 안되고 가족이나 그 외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엘리야는 단 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다.  더우기 백성들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물쭈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기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시험의 때에 나의 믿음의 본 모습이 어떤지 분명히 드러난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엄습해 오지만 결국 씨름하게 되는 것은 그것들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신앙과 하나님에 대해 씨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믿음은 많은 부분 단체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존재한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대결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영력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당시의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을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바로서게 하기 위함이다.  나의 위안과 영적 유희와 내가 얼마나 영적인지 과시하기 위해 나의 개인적인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지만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시는 목소리는 바로 하나님 왕국 그리고 교회를 위해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주님, 실패에 익숙한 나지만 주님을 붙잡고 놓치 않는 이 개인적인 영적 투쟁과 갈등을 통과하며 주님의 나라가 섬을 보게 하소서.  기독교의 문제들이 드러나지만 이 시대에도 바알 앞에 무릎 꿇지 않는 무수한 주의 종들과 형제들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들을 복주시고 850대 1의 싸움이 단지 숫자적인 싸움이 아니라 1 뒤에는 만군의 주가 계심을 온전히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