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의 상황을 보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백 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을 숨기고 먹이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고 그런 역량을 가진 믿는 이들은 몇 되지 않겠지만, 자신이 믿음으로 하는 일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고 숨어서 하고 또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 하는 모습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동시에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아무개 목사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 7천명에 대해 ‘바퀴 벌레’ 같은 이들이라고 그의 설교에서 여러번 비판했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면 나는 바퀴 벌레 보다 더 못한 존재 아닌가?  나는 얼마나 삶 가운데 바알 앞에 무릎 꿇고 있는가.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하고 귀신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에 대해 회개하지 않았는가.  성경에서 야곱을 벌레라고 하셨고 또 정말 벌레만도 못한 나지만, 그것은 죄인의 모습으로서 그렇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뀐 나는 얼마나 영화로운 위치에 있는가?  그리고 그 7천 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남겨놓으신 이들이었다.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이들은 당시 순교의 각오를 하고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걸 보면 그 7천 명은 바퀴 벌레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어갈 귀한 남은 자들 이었다.  우리의 2세들이 그런 7천 7만 70만 혹은 7천 만이 되기를…

오바댜의 모습이 온전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나에게 위안을 준다.  비록 한 명의 목숨이라도 연명하게 하는 일은 못한다 할지라도, 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순간 순간 엄습하고 선교와 전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나의 이러한 삶 자체를 귀히 여기시고 동행하시며 이제까지 인도해 오신 주님을 본다.  과거에는 바퀴 벌레였다 할지라도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후사인 영광스러운 신분이 되었다.

주님,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나의 생각과 마음이 세상으로 오염되어 바알 앞에 무릎 꿇는 때도 많았지만 주님 앞에 돌아와서 용서를 구하며 감사함으로 아뢸 때 나의 주인은 세상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다시 느낍니다.   주 앞에 무릎 꿇을 때 세상과 나는 사라지고 구속한 주님만이 계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