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는 화내는 문제에 대해 내가 잘못했으면 화낼 자격이 없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면 화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단다.  주님도 돌아가시기 전 빌라도 앞에서 당신에 대해 별 변명이나 변호를 하지 않으셨다.  

당시 독신이었던 중국의 어느 목회자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함께 교제하는 선교사가 그 문제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요즘 그대의 집에 어떤 여자가 드나들며 함께 산다고 했는데 사실이냐.  그러자 그 목회자가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선교사는 어떻게 주의 종이 그럴 수 있느냐며 꾸짖고 자초지종을 듣지 않고 돌아 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여자는 목회자의 어머니였다.  이 실화를 읽으며 왜 그는 선교사에게 그 자리에서 정확히 해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랬다면 모두 시원하게 밝혀지고 좋았을텐데..  특히 교회를 인도하는 목회자에 대한 소문은 주님의 교회에 매우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데..  물론 요즘은 성적으로 타락한 목회자들에 대한 소식이 간간히 들리면서 이런 얘기는 별 해명이 필요 없이 당현히 사실로 받아 들여 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 개인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든,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면 변명할 자격이 없지만, 사실이 아니라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와 연관되고 어떠한 형태라도 덕을 끼치지 않고 해를 가져온다면 얼마나 슬픈일인가.   그러니 반드시 해명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고 결론을 냈었다.  하지만 그 중국 목회자는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형제간, 특히 목회자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 자체가 악한 것이고 확실히 알아보기 전에는 엉뚱한 소문 자체를 전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했음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의 문제이고 영적인 문제이다.

어제 좀 문제가 있어서 밤에 잠을 설쳤다.  아침에 힘과 용기를 얻는 본문 말씀이 있다면 감사하고 좋겠지만 특히 구약 말씀에서는 그러한 것을 찾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로뎀 나무를 주시던가 아니면 까마귀를 통해 빵을 주시던가 뭔가 쉼과 안식을 주시면 좋겠는데.. 아, 나는 엘리야가 아니지..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도 위로의 말씀과 동시에 내가 필요한 회개의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 큐티의 제목은 ‘악인의 성공은 축복이 아닙니다’인데 본문에서는 축복에 대한 내용이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을 진정한 복으로 기록하지 다른 것은 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자손에게 넘겨주고 여러 성들을 건축하고 사업이 확장하는 등의 것은 성공과 축복 같아 보이지만 영원이 아니라면 천년이든 만년이든 순간이요 찰나이기에 그 영광과 복은 실재가 아니요 물거품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고 법에 별 제재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해 많은 믿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의 성공과 안위는 순간임을 다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을 소망하고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왕국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  세월호도 그렇고 정치 문제,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 더우기 교회 안의 많은 일들에 대해서도 도무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럴 수 없다는 푸념이 들리고 그런 푸념에 동의하고픈 유혹이 생기더라도, 주님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지며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는 계시록의 말씀, 그리고 주께서 영원히 통치하시며 악은 심판을 받아 끝나고 믿음의 선한 양심은 은혜로 구원받을 것이라는 사필귀정을 믿는다면 나 개인의 해명은 필요가 없다.

시 46:10에는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그리고 롬 12:19, 히 10:30 에서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고 말씀한다.  원수를 직접 갚는 것은 믿는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것은 확대 해석하면 나 자신에 대해 변호하고 변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나의 원모습은 주 앞에서 결코 의롭지 않을 뿐더러 주님을 신뢰한다면 원수를 갚으시고 모든 것을 정의롭게 만드실 그를 의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덕목 중에 하나가 소망인데,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처럼 믿음이 있다면 소망을 갖고 소망을 잃지 않을 때 비로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  

주님, 결국 다시 생각해 보니 제 자신이 죄인인 만큼 다른 이들도 용서와 용납과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임을 깨닫습니다.  그걸 또 잊었네요.  모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고 형제들임을 봅니다.  주님의 은혜 아래 사필귀정할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이 나의 소망이시고 나의 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