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큐티를 하는 것과 큐티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큐티는 하나님과 일대일로 은밀한 것이지만, 나누기 시작하면 더 이상 은밀하지 않기 때문이다.  큐티의 목적이 말씀을 읽으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삶에 적용하는 것 까지에 있기 때문에, 아침 시간에 읽고 깨달은 것을 바로 ‘나눈다는 것’은 사실 어폐고 한계가 있다.  그 말씀을 살아내고 적용해서 승리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큐티를 진정으로 나누기 위해서는 아침에 말씀을 읽은 직후가 아닌 밤 시간에 하루를 돌아보고 얼마나 말씀대로 살고 승리했는가를 나눌 때 진정한 나눔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돌아보면 아침에 큐티를 했다고 해서 밤마다 승리의 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실패를 경험하고 아침에 읽은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는 자각과 자책이 더 클 때가 많다.  어떨 때는 심히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마치 공회전하듯 내가 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큐티는 계속되어야 한다.  

큐티, 아니 말씀 읽는 것 자체가 내가 뭔가를 새롭게 깨닫고 그것을 통해서 삶에서 승리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살기 위한 것이 첫째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씀을 접하는 이유는 그 말씀 자체가 나에게 생명이 되고, 그 말씀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보며 말씀으로 세상에서 계속 더럽힘을 당하는 내 양심과 생각을 씻어내기 위해서다.  그럼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더 알고, 그 임재하심 속에 머물기 위해서다.

기독교의 진리는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다른 것이 무언가 좋은 말씀을 열심히 따라해서 해탈을 얻거나 자유함을 얻거나 삶에 힘이나 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떠함과 노력이 아닌,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구원받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그 말씀은 ‘언약의 말씀 covenant’ 이다.  오늘 큐티 본문 제목은 ‘언약의 은혜가 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인데, 오늘 말씀에 보니 더욱 그러하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과 그의 아들 아비얌 그리고 그의 아들 아사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지만, 다윗과 세운 언약 때문에 하나님은 그 계보를 멸하지 않으신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는 말씀의 의미를 좀 알 것 같다.  

큐티를 나누는 것은 승리의 비밀과 방법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적용했더니 승리했다는 것은 좋은 간증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방법론에는 한계가 있다.  철저한 방법과 프로그램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신성구락부’의 첫 감리교 멤버 혹은 소위 ‘창시자’인 잔웨슬리와 친구들은 그러한 모습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 부터 ‘methodists’ 라는 약간 조소섞인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방법’ 혹은 ‘프로그램’으로 비춰지는 그들의 모임 형태 자체는 매우 본질적인 것을 붙들고 있었는데 모임의 이름대로 ‘신성’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삶 처음에 ‘큐티하면 행복해 집니다’ 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행복 보다는 ‘거룩’이 먼저다.  큐티하는 목적은 ‘신성’을 위해서다.

그래서 승리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실패해도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 ‘신성’을 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삶 속에는 승리보다는 실패가 많다.  물론 실패를 너무 자주 하면 자신을 ‘실패자’로 인식하고 상황도  그렇게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포기할 수 있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요는 실패를 통해 내가 배우고 성장하는가에 있다.  실패없이 성공만 했다면 정말 계획을 치밀하게 잘 했거나 아니면 계속해서 운이 좋거나 혹은 너무 쉬운 삶만 살거나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운이 좋기란 힘들고 그럴 경우 후에는 정말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사업 역시 많은 실패를 경험한 후에 보통 성공한다.  9번 실패하면 열번 째는 성공한다는 말도 있다.  과거의 실패를 통해 망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한번 사업에 실패했다고 포기하면 재기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평탄한 삶이 아니라 계속해서 죽음을 통과하며 부활을 맛보는 삶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눈다.  내가 영적으로 본이 되거나 성공의 간증이 많거나 아니면 정말 거룩한 삶을 살아내서가 아니라, 오늘 밤에 다시 후회하고, 주님의 임재 보다는 죄를 더 많이 지은 나를 발견하게 되고, 혹은 사춘기를 앓고 있는 큰 녀석과 불화를 또 경험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모든 것이 주님의 언약 안에 있음을 믿고 신성을 향해 손을 뻗는다.

주님, 주님께서는 승리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실패합니다.  주님 안에 있기 원합니다.  오늘 구원하시고 거룩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