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솔로몬의 보화와 금방패 500개가 솔로몬 사후 르호보암 5년에 이미 모두 애굽에게 빼앗긴다. 왕국이 나뉘면 약해지고 그 안의 보물은 ‘내가 여기 있소’ 라고 외국에게 침략을 청한다. 르호보암은 ‘백성을 번성케 함’ 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에 맞지 않게 애굽에 크게 당하고 여로보암과 계속 전쟁을 한다.
21절과 31절 두 번에 걸쳐 르호보암의 어머니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라고 한다. ‘나아마’라는 이름은 창세기 두발가인의 누이로 처음 나오는 이름인데, ‘나아암’이라는 남자 이름의 여자형이다. 그런데 이 ‘나아암 (Na’am)’ 의 뜻은 pleasure로 쾌락, 즐거움 등을 뜻한다. 그 뜻 자체는 좋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떠나서 쾌락을 찾는 것이면 결국 쾌락이 신이 되어 버린다. 삶의 모든 것에서 쾌락을 추구한다. 르호보암은 그러한 이방 여자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선대가 이루어 놓은 그 웅장한 성전에서의 제사가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운다. 아세라 상은 쾌락을 대변하는데 많은 부분 비정상적인 성적 쾌락이며 비단 남녀 사이만이 아니라 퇴폐적인 ‘남색’의 쾌락도 포함한다.
나아마의 또 다른 의미는 ‘agreeable’이다. 즉 ‘쾌락’과 같이 ‘기분 좋은, 쾌활한’ 이라는 뜻인데, 단어 자체를 보면 agree+able이다. 동의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모든 것에서 기준이 없고 그냥 다 좋다. 아니, 나의 동의만 가능하면 된다. 그러니 스트레스도 없고 싸울 필요도 없다. 오직 쾌락만을 위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죄의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아마가 되어 버리고 누룩이 교회에 가득하게 된다. 나의 삶에도 ‘이 정도 쯤이야’ 라며 내 생각에서 얼마나 여러 것들과 동의하고 타협하려 하는가. 그러다 보면 한 순간에 주님의 임재에서 떠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솔로몬의 어마어마한 보물이 이렇게 한 순간에 가버린 것 처럼 내 안의 영적인 보화를 누리는 것도 한 방에 가버릴 수 있다. 나의 눈이 하나님을 떠나 ‘희락’이 아닌 쾌락을 좇고, 단호함을 버리고 타협을 시작하면 형제 자매 그리고 가족 간에 다툼이 일고, 내 안의 영적 유산과 보물은 결코 빼앗길 수 없는 주님 자신이라 할지라도, 원수는 그 누림에서 멀어지게 함으로 더 세상적이고 육적인 쾌락과 만족을 좇게 유혹한다.
우리 자녀들은 어떤가? 아… 정말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전통적인 가정교육은 부모 특히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지만, 이 시대의 어머니 나아마는 이제 인터넷과 미디어가 되었다. 이제는 어머니보다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아버지보다 더 대답을 잘해주는 인터넷이 우리 아이들을 양육한다. 영적 유산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자녀들의 대학교 가는 나이면 80% 이상이 교회를 떠난다…
주님, 나를 구원하시고 우리 아이들을 구원하소서. 돌파구를 주소서.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다시 한번 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 또 옆집 아이들을 온전히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