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6:30에는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라고 기록하며 아합과 이세벨의 이야기를 통해 구약 시대의 ‘가장 악한 왕’이라는 느낌을 준다.  물론 남유다의 므낫세 왕도 악했지만, 북이스라엘의 이 아합이 ‘가장 악한’ 왕으로 등극되는 것 같은데, 사실 아합보더 더 악한 왕이 바로 여로보암이다.  그 이유는 그 후 세대로 악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민족이 정치적으로는 둘로 갈릴찌라도 성전을 통해 계속해서 하나로 남을 것을 원하셨지만, 여로보암은 백성을 빼앗길까 두려워, 즉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은 안중에도 없음으로 결국 짝퉁을 양산하게 되는데, 이 짝퉁은 결국 '짝퉁 하나님'이고,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여로보암은 ‘계획적으로 (28절)’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어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로 인도했다.  그리고 왕으로서는 권리를 행사 할 수 없는 영적인 것들에 대해 제 맘대로 행한다.  30절에는 ‘이 일이 죄가 되어’라고 하는데, 13:34역시 ‘죄가 되어’라는 표현을  한다.  ‘죄가 되다’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역대상 두 곳에만 나오는 표현이다.  마치 죄의 ‘시작’을 말하는 것 같이 들린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악행이 없었더라면 북이스라엘의 타락 특히 아합의 모든 더러운 악행은 없었을지 모른다.

야고보서 1:15 말씀이 생각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말씀은 여로보암에 대한 말이고, 오늘 혹시 죄를 ‘시작’하는 나에게 하는 말씀이다.  죄도 살아있어 장성한다.  그런데 이 황당한 생명체인 죄는 사망을 낳는다.  결국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씨다. 

주님, 주의 은혜로 구원 받았지만 내 안에 죄가 있고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압니다.  주님보다는 나의 욕심을 택할 때가 많습니다.  포기할 때도 있지만 기회가 오면 얼마나 발빠르게 욕심을 추구하는지요… 죄의 시작을 묵인하지 않게 하시고 과감히 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참된 믿음 허락하소서.  주의 교회가 하나됨을 믿으며 많은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몸된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마음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