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장군이라는 말은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 라는 뜻이다. 따르는 이들이 있어야 장군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혼자서는 왕이 될 수 없다. 따르는 백성, 다스리는 무리가 있어야 왕이 될 수 있다. 르호보암은 그의 교만과 무지로, 또 한면으로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열 지파의 북이스라엘은 잃어 버리고 자신이 속한 유다 지파에 대해서만 왕권을 행사하게 된다. (유다 지파 역시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의 오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왕권’ ‘혈통’ 혹은 이미 있던 ‘시스템’ 그리고 ‘권력’ 등이 사람들을 얻고 움직일 수 있으리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내가 왕인데’ ‘이미 왕권은 서 있는데’ 등의 생각이 그를 교만하게 했던 것이다. 백성을 움직이려면 권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권력’이라는 단어가 국어 사전에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라고 정의 되어 있는데, 쉽게 말하면 남이 하기 싫어 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시킬 수 있는 힘을 뜻한다. 그래서 첫째로는 정치적인 권력이 있지만, 요즘은 오히려 경제적인 권력이 더 큰 것 같다는 느낌이다. 독재 시대나 왕정 시대는 정치적 권력이 최고였지만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적 권력은 ‘임기’라는 시간적인 제한이 있다.
그런데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에는 ‘권력’ 외에도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3S로 사람들이 오락과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삼게 한다면 그런 것도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이 된다. 요즘 아이들은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데, 미국에서도 ‘fun’ 이라는 것이 특히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fun하지 않으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fun위주로 예배 시간이나 설교를 준비하여 아이들이 좀 더 예배에 참석하기를 바라는데,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을 얻으려면 마음을 얻어야 한다. 권력을 써서 육체적인 제약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순간적인 즐거움에서 찾는 것이 문제지만, 그렇게 움직여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내면으로부터 만족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자발적이고 의미있는 것 만이 사람들의 삶에 만족과 보람을 주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마 4:19그리고 막 1:17에 제자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어 번역에 문제가 있다. 사람을 ‘낚는’이라는 동사는 원어에는 없다. 원어는 ‘사람들의 어부들’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즉 사람을 뭔가로 유혹하거나 ‘낚는’ 것이 아니라 어부가 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사람들을 얻는 이들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람을 얻는 방법은 ‘그물’ 즉 ‘네트워크’인데, 이것은 ‘시스템’인 동시에 ‘마음을 얻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마음을 얻지 못하면 언제건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스템도 마음을 얻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마음을 얻는 목회, 마음을 얻는 섬김, 마음을 얻는 사귐, 마음을 나누는 교제가 오늘 교회에 있는가? 내 삶 속에 있는가? 우리가 제자라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은 우리가 ‘사람들의 어부들’ 되는 것이고, 이것은 주님 주신 권위를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권위는 주님을 섬기고 형제를 섬기는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본다.
주님, 주께서 나의 마음을 얻으시는 것 처럼, 주의 제자들과 주의 종들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삶 살도록 도와 주소서. 내가 가진 어떠한 것, 혹은 방법이나 지위 등으로 사람을 윽박지르거나 혹은 교묘한 방법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얻으시는 일상의 사역을 이루게 하소서. 또 주님께서 나의 마음도 오늘 좀 더 얻으시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