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출충하다는 것은 동시에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얘기일 수 있다. 지혜는 탐구를 통해 직관으로 오고, 탐구는 결국 호기심이 그 원천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처음부터 이방 여자인 바로의 딸을 데려와서 아내를 삼았는데, 그것은 외교적인 방편일 수 있지만, 그 후에도 후궁과 첩을 포함해 천 명이 되는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다. 생각해 보면 외교 관계를 위해서는 이 정도나 필요하지 않다. 결국 솔로몬의 이방에 대한 호기심이 이방 여인들의 이질적인 매력을 추구하게 했던 것 같다.
지혜가 출중하여 그로써 문화를 이루게 되면 자신이 생기고 결국 교만이 싹튼다. 그래서 아무리 이방적이고 이질적인 것이 와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여기게 된다. 헤게모니 국가들의 흥망성쇠에서 비슷한 양상을 볼 수 있고, 오늘 말씀의 솔로몬의 예가 비슷하며, 오늘 미국이 비슷하다. 성경적인 질서와 가치와 문화를 바탕으로 처음 세워진 국가가 어느 순간 세상적인 문화를 주도하더니, 이제는 세상 문화만을 따라가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님이 드러난다. 소위 '미국 문화'는 이제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 오히려 학교에서는 불경이나 타 종교의 경전은 연구할 수 있되 성경은 금지하는, 자신의 원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선교를 할 때 자국 문화를 강요하지 말라는 지침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진보된 문화는 그렇지 못한 문화에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치게 되고, 사실 성경에도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고전 11:16)' 고 하며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문화에 대해 금한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자국 문화'는 성경적인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 부강해진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문화를 세상에 전파하고,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이끌기를 바라셨지만, 오히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로 인해 거룩한 문화를 저버리고 이방 문화에 잠식 당한다. 성경적 문화는 많은 경우 세상의 문화를 이기지 못한다. 성경적 문화는 자아 부인을 요구하지만 세상의 문화는 자아 실현과 자아 극대화를 지양하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 결국 절대 권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어떤 문화를 받아들이고, 내 안에서 소화하며, 거기에서 또 어떤 문화를 전파하는가? 그 안에서 자아가 부인되는가 아니면 '실현'되는가? 주께서 나타나시는가 아니면 내가 돋보이는가? 내가 절대 권력인가 아니면 주의 종된 자의 위치로 서 있는가?
주님, 저에게 절대 권력이 없음을 감사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원히 절대 권력이시며, 이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을 보내신 하늘의 문화만이 영원한 문화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오늘 무심코 즐기는 여러 가지 모습의 문화적인 것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새롭게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