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특이한 공통점 중에 하나가 많은 경우 무언가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부자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가능해서 그런 취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모으는 품목들을 보면 꽤 다양해서 작게는 우표나 동전으로 시작해서 장난감 피규어, 나아가서는 스포츠카나 혹은 괴상한 것들을 모으기도 한다.

솔로몬 역시 재물이 늘어나자 그의 권력과 더불어 쌓은 재물로 더 많은 재물과 물품을 모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 중 우스꽝 스러운 것은 금을 쳐 늘려서 큰 방패 작은 방패를 도합 500개나 만든 것이다.  방패는 싸울 때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것인데, 그 목적과는 전혀 관계없는 금으로 만든다.  사치품이다.  그러고는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다.  금이 모이면 경제는 죽는다.  금을 풀어야 경제가 사는데 이렇게 쓸데없이 금으로 방패를 만들고 한 곳에 모아둔다.  아마도 주위 나라에서는 금이 부족해서 나라 살림에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것도 솔로몬이 계산에 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그의 모으는 취미는 결국 이스라엘로 만국에 복이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원래 목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비싼 것들이나 기호식품을 보면 끌리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좀 이해가 늘고 보니 그 이면에 그러한 것들이 만들어지고 유통 되어지기 까지 많은 이들의 고통도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무심코 마시는 커피나 농작물을 만들기 위해 현지인들은 쌀이나 밀같이 주식 작물 재배를 포기 하는 대신에 돈이 되는 기호 식품을 재배 해야 하고, 이러한 경제 구조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  오늘 언급된 금으로 입힌 상아 보좌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코끼리들이 희생되고 또 그 코끼리들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솔로몬의 영광 그 이면에는 너무도 어두운 그늘과 상처와 희생이 있음을 본다.

귀한 것이 많아지면 더이상 ‘귀하지’ 않다.  귀하다는 말은 흔하지 않다 즉 희소성이 있다라는 말인데, 귀한 것이 발에 밟히는 지경이면 더 이상 귀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금이나 은 혹은 백향목 말과 병거도 너무 많아지면 그 가치를 잘 느끼지 못한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가.  사실 생각해 보면 이만큼 말씀이 풍성한 시대는 역사적으로 없었던 것 같다.  원한다면 어디에서든 말씀을 듣고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성경책은 마음만 먹으면 명품처럼 잘 제작된 것들을 클릭 한번으로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부유함이 과연 우리에게 감격과 기쁨과 감사를 주는가.  중국 오지에서 성경을 태어나 처음 받아보며 감격하는 이들의 그 감격과 감사와 기쁨을 우리는 누릴 수 있는가.  그러고 보면 부요하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 있지 않다.  나에게 작은 것이라도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는가에 있다.
  
사람들은 오늘도 또 무언가 모으고 있다.  좀 고상한 취미라면 책을 모으는 것일텐데, 무엇을 모으던 그 모은 것이 내 안에서 영원히 있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버려지거나 흩어지거나 빼앗기게 된다.  솔로몬의 보화처럼.

주님,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것을 내 안에 두셨으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많은 화려한 것들이 나의 마음을 빼앗지 않도록 주님의 어떠하심을 더 보여주시고 오늘도 주를 찾고 주를 만나고 주를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