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지금 찾아보니) 펫샵 보이즈 라는 이들이 한 노래가 여기저기 들렸다. 가사는 ‘I’ve got the brains, you’ve got the looks Let’s make lots of money’였는데 처음에는 뭔 이딴 노래가 다 있나, 사랑을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이별을 서러워하는 것도 아니고 별 희한한 가사가 다 있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이지 이야말로 미국적인 노래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결국 자본주의 나라 미국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똑똑함과 멋진 외모를 가지고 궁극적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가장 똑똑했던 솔로몬 역시 그 지혜로 많은 부와 재물을 얻는데, 오늘 말씀의 스바 여왕도 솔로몬의 지혜와 건축물과 그에 따른 문화에 대해 감동을 받고 결국에는 금 120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바친다. 또 많은 백단목과 보석이 따라왔다. 그러고 보니 위의 노래가 맞다. ‘브레인’으로 ‘멋진’ 건축물과 문화를 이뤘더니 ‘많은 돈’이 따라왔다. 다행히도 스바 여왕은 그의 지혜의 원천인 여호와를 송축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마치 여호와를 잊지 말라는 예언 같이도 들리는 말을 한다. 그런데 정작 솔로몬은 여호와를 잊어가는 것 같다.
뭔가 좀 일이 안되고 꼬일 때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보며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는지 반성할 수 있지만, 아주 잘 될 때 오히려 소위 ‘엘벧엘’로 눈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과연 내가 자격이 있어서 누리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선물인지, 그리고 그 원천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이 목적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그가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서’ 였지만, 그가 지혜를 구한 이유는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라고 했던, 즉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함으로 다스리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즉 다시 말하면 자기의 ‘브레인’을 믿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택한 백성과 그의 왕국을 건축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 지혜를 얻은 그가 그 많은 건축물을 위해 동원했던 백성들에 대해 별 다른 보수나 혜택을 돌리지 않는다. 그 많은 백단목으로 결국 별 쓸모 없는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었다. 지금 말로 하자면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지을 수도 있는데 일반인들은 별로 가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박물관이나 문화회관 혹은 변두리 도로 등이나 건축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한다.
‘명품’ 혹은 ‘럭쥬리’ 라는 말이 많이 회자 되지만 사실 그것은 ‘사치품’이고 ‘필요 이상’의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들이다. 성경 여러 곳에, 특히 야고보서에는 이러한 ‘럭쥬리’가 죄악임을 말한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luxury)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약 5:5)’ 특히 3절에는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라고 하며 말세에는 재물을 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말세에는 재물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나눠야 한다. 나눌 것이 별로 없는 나는 별 걱정이 없지만, 나눌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말이다. (ㅎㅎ)
다시 지혜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 지혜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서로에게 필요를 채워주기 위함이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어떤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까?
주님, 지혜를 구할 때 얻지 못하는 것은 그 목적이 잘못됐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브레인’으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처세 잘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반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성도들의 필요를 위해 지혜를 구한다면 주께서는 나에게 지혜가 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각 사람의 필요를 채우시고, 그 필요를 채우는데 제가 조금 쓰여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쓸모 있는 사람 되게 하시고, ‘필요 이상’의 것은 마리아가 기름을 부었듯이 오직 주님을 위해서만 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