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라는 말이 있다. 정말 성숙한 인격이라면 이미 그 안에서 많은 성현들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서 성숙한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라도 매일 성현의 말씀을 접하며 자신을 계속 돌아보고 옛글에 비추지 않으면 자연스레 인간의 악함이 올라오게 됨을 말하는 것 같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특별한 절기는 셋이 있었지만 민수기에는 매일, 매주(안식일), 매달 그리고 절기에 제사 드릴 것을 명하셨다. 특히 매일 상번제 (항상 태워 드리는 제사)를 드려야 함을 말씀한다. 오늘 해설을 보니 솔로몬이 매년 세 번의 절기를 지킴으로 성전의 제사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언급하지 않음으로 전장에서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에 대한 것을 저버리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매일 드리는 제사는 솔로몬의 몫이 아닌 제사장들의 몫이고 왕으로서 솔로몬의 역할은 다스리고 재판하는 것이지만, 일 년에 세 번 만 제사에 직접 참여하는 솔로몬의 태도는 그의 바쁜 일상 때문에 영적인 것을 미루는 듯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적인 것을 미루다 보면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 할지라도 타락은 금방이다. 아니, 서서히 타락하는 자신을 보지 못하고 어느 순간 급속히 타락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좋았던 두로 왕 히람과의 관계, 성전과 새로운 왕궁 건설, 그리고 여러 성읍들의 건축 등과 더불어 백성을 다스리는 모든 일 등의 업무는 가히 살인적이었을 것이지만 이 가운데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지혜를 주신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 ‘순종하여 법도와 율례를 지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중요한 일들 때문에 제일 중요한 그것을 포기했다.
영적인 것을 포기할 때 그 틈을 육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육적인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며 그 부족함이 커 보이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계산으로 그 틈을 메꾸기 위해 금을 구하러 다니게 된다. 금을 구하여 얻게는 되겠지만 후에 그것으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아.. 나는 타락하는 솔로몬 아닌가. 육적인 것을 위해 영적인 것을 미루는 때가 얼마나 많나. 그러다 보니 육적인 부족함이 더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메꾸기 위해 더 육적이고 계산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 믿음은 소용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매일 주님과 만나야 하고 항상 나를 태워 드려야 한다. 구약 시대 제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도무지 무슨 낙으로 사나 할 정도로 제사만을 드리기 위해 삶을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살인적인 제사 스케줄로 가득하지만, 이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된 신약 시대의 삶은 오히려 내 삶 ‘전체’를 드리는 삶임을 잊을 때가 많다. 한국의 독특한 새벽기도는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께 드리는 좋은 제도였지만 그것이 종교적인 모습으로만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큐티를 통해 말씀을 접하고, 그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묵상하며 적용하는 삶을 사는 것은 조금 더 진보한 방법이겠다. 그러나 이러한 큐티에도 나 자신을 온전히 태워 없애 드리는 번제가 아니라 단지 말씀을 읽는 것으로 끝난다면 오후 쯤에는 솔로몬의 타락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타 없어져야 한다. 아니, 어제라도 번제로 드려졌었는가?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주님, 지금 시대에 나의 삶이 종교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가 종교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하심을 압니다.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온전히 바쳐져야 하고 온전히 태워져야 하는데, 저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보다는 나의 어떠함을 잃을까 두려워 자존심만 지키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용서하시고 이 시간 태워주소서. 남김없이 다 타게 하소서. 염려와 유혹으로 부터 온전히 태움받게 하소서. 주님을 주님으로 섬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