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말씀은 솔로몬의 행정을 말하면서 그의 우선 순위를 보여주고, 오늘은 그에 따른 영광을 나타내 주고 있다. 솔로몬하면 항상 ‘지혜’와 연관되어 생각하게 되지만, 오늘 29절에는 ‘넓은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말씀한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뿐 만 아니라 그 제국적인 규모의 행정과 넓은 영토에 이르는 주위 여러 이민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수지만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넓은 마음’이었다.
어렸을 적 교회에서 찬양 경연 대회를 하는데 1등 자리를 남겨두고 나와 어느 여자 아이만 남았다. 1등 자리가 탐났던 나는 심사위원들이 누가 1등 하고 싶냐고 물어볼 때 내심 속으로 ‘나요! 나요!’ 하며 외쳤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못하던 모습을 눈치채고 그 여자 아이는 ‘그냥 니가 가져라!’ 라고 쿨하게 말했다. 결국 내가 1등을 했는데… 아뿔사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심사위원들은 ‘자, 이제 대상은…’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ㅠㅠ 결국 그 여자 아이가 대상을, 내가 1등을 했다. 그 사건은 좁은 마음과 좁은 시야를 가진 나에게 두고두고 곱씹게 하는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ㅎㅎ
내 개인적인 삶은 물론이지만 교회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좁은 마음과 좁은 시각으로 살고 있나… 자기 것을 제대로 챙겨 먹어야 지혜로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챙겨 먹는 것’으로 끝나지 솔로몬처럼 넓은 지경을 다스리게 될 수는 없다. 왜 교회에서까지 '챙겨먹기'를 하려고 하는지... 교회는 복과 생명과 슬픔과 아픔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
사람의 인격이 ‘지, 정, 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면 지혜는 아마도 ‘지’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정’도 무시할 수 없는데, ‘지’가 온전히 서려면 분명 ‘정’이 올바르고 풍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혜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하고 넓은 마음은 곧 지혜 있음을 보여준다. 솔로몬은 지금으로 말하면 ‘천재’였던 것 같은데, 이러한 면은 ‘천재’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천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냥 머리만 비상하고 혼자 틀어박혀 사는 그런 은둔형 천재가 있는 반면, 넓은 마음으로 다스리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그런 천재들이 있다. ‘홍익인간’을 인본주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귀한 것일까. 물론 그 바탕에는 마땅히 ‘하나님으로 부터’가 있어야 한다.
내가 자랄 때는 모두들 IQ를 말하더니 지난 10-20년 사이에는 이제 EQ의 시대가 왔다고들 한다. 하지만 IQ EQ 모두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지혜와 넓은 마음’ 아닐까. 그리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동시에 내가 당연히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지만 포기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십자가의 길이다. 지혜와 넓은 마음은 십자가를 지게 한다. 주님이 먼저 나를 다스려야 내가 다스릴 수 있다.
주님, 십자가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주님께서 보이신 가장 지혜로운 하나님의 지혜였음을 압니다 (고전 1:21). 주여, 나에게 지혜가 되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셔서 나 자신을 주의 십자가 밑에 무릎 꿇게 하시고, 오늘 내 십자가를 지게 하시며, 나 자신과 가정을 주님 주시는 권위로 다스리게 하소서. 내 생각과 입술의 말과 고백이 일치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