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장을 읽을 때 부터 걸리던 것이 이제 2장에서는 확실히 걸린다.  이 잠언은 솔로몬의 잠언인데 그 지혜의 왕이 말년에는 심각하게 후패해졌음을 안다.  더우기 오늘 말씀은 ‘내 아들아’ 하며 시작하는데, 그의 아들들이 그리 지혜로운 인물들이 아니었기에 과연 ‘내 아들’이 누구인가도 궁금하다.  

성폭행 행각이 드러나서 적잖이 실망을 줬던 아무개 목사의 많은 책들에서 과거 은혜를 받고 도전을 받았었다.  그 수하 황아무개 전도사의 책도 많은 가르침과 도전이 있었다.  이제 그들의 책들은 모두 버려야 하는가?  

솔로몬의 말년 실패가 있었음에도 잠언이 성경에 포함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며 섭리다.  주님께서도 바리새인들에 대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 23:3)’ 라고 하시며 행위면에서는 실패함을 본받지 말아도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에 입각한 계시에 대해서는 거부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 J목사의 책들은?  아직도 고민중이다.  물론 그의 책이 성경은 아니기에 그런 권위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내용은 좋은 것이다.  사실 기독교에서 좋은 용어를 이단들이 사용한다고 해서 그만 쓰게 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왕국, 마라나타, 신천지 등등..)

그래서 ‘내 아들’은 바로 이 말씀을 읽는 나겠다…

역시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의도가 핵심이다.  그 목적과 결과는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상처와 손해가 난다고 해도 그것으로 여호와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것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더 알 수 있다.

다양한 오락을 추구하여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을 권유하고 있는 지금 세대에도 근신은 필요하다.  자발적으로 쓴나물을 먹고 때때로 골방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가.

16, 17절은 좀 이상하다.  음녀의 원어는 외국 혹은 외부 여자이다.  그런데 이런 이방 여자가 ‘젊은 시절의 멘토(원어, 짝이 아님)와 그의 하나님 (엘로힘)의 언약을 잊’었다.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신’의 뜻으로 이방 신을 의미하는데 쓸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엘로힘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 이방 여자의 신이 엘로힘이다.  어떻게 엘로힘을 섬기면서 이방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앞 부분 처럼 그녀는 그녀의 멘토의 말을 따르지 않고 세상 풍조를 따르다가 결국 엘로힘의 언약도 잊고 이방이 된 듯하다. 

어릴 때 나이보다 훨씬 조숙함을 넘어서 도가 지나치면 속된 말로 ‘까졌다’라고 한다.  ‘까지기’ 위해서는 아이의 본성과 주위의 교육이나 영향 등의 요인이 작용한다.  내 나이 세대는 텔레비전이나 만화 등이 ‘까지’게 했지만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아이들이 나이에 비해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일찍 접하게 된다.  까지게 된다.  그러면 결국 나의 아이들도 이방 여자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의 식구들은 계속해서 그녀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  너는 이방과는 다르다.  우리는 DNA가 다른 존재들이다 라고 정체성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21, 22절은 지금 현실에서는 전혀 아닌 것 같다.  얼마전 광복절을 지내며 많이들 성토한 것이 독립군 자녀들은 이제 벌써 3대까지도 고생하고 있고 더우기 그들 중에 범죄자들도 생겼는데, 조국을 팔아먹고 자기 안위를 챙긴 이들은 오히려 그 자손들이 복받은 것 같고 어쩌면 더 양심적으로 (아니면 그렇게 보이게) 성장한 것 같은가 하는 문제다.  하나님은 과연 그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신가?  믿는 이들이 어쩌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것이다’ 하는 말이 항상 맞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고르반이 생각난다.  물론 정말 하나님께서 다 잘 해주실 수 있고 그렇게 된 경우도 많지만, 그 비밀은 그 바쁜 와중에도 위해 기도하고 자녀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며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쳤느냐 이겠다.

그날에 갚으실 것이다.  최인혁의 그날이 오며는...

그날이 오며는 우리는 눈물 없겠네 당신이 다시 오시는 그날
그날이 오며는 그리운 얼굴 만나리 당신이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 모두 다 정성 다해서 주님 맞을 준비해요 영원한 왕으로 다시 오실 주 맞을 준비해요
그날이 오며는 영원한 노래 부르리 당신이 다시 오시는 그날
당신이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의 믿음을 알리 다시 오시는 그날

주님, 이 땅에서 주님을 따르고 말씀대로 양심대로 살려다 고난 받고 억울한 일을 당했던 모든 이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그들을 높이실 것을 믿습니다.  그 날이 오며는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땅에서 왕노릇할 것을 믿습니다. 
돈 잘 버는 사람은 거리마다 돈벌이가 가득한 것이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다.

지혜도 꼭꼭 숨어서 자신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지으신  모든 것을 통해서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보기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볼 수 없다.  바로 코 앞에 있어도..

답답하다.  내가 지혜였다면 이런 답답함에 오늘 말씀처럼 경고를 발했을 것이다.

지혜는 어떤 처세술이나 방법이 아니다.
지혜는 똑똑함이나 영리함이 아니다.

지혜는 ‘나의 영’과 관계가 있다. (23절)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고전 1:2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