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 때문에 미국 이민 온지 30년이 된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다.  이민 온 날이라고 특별히 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에게는 이민 온 날이 잊혀지질 않고 특별한 의미로 남는다.  아마도 인생에서 큰 전환기를 맞은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영접했던 날 (소위 모태 신앙자 들은 이것이 좀 불분명할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대강 고등학교 때 중고등부 성경공부 시간이었다) 혹은 주님을 새롭게 경험한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되돌아 보면 과연 지난 30년 동안 무엇을 했나, 무엇을 이루었나 생각해 보니 한숨만 난다.  세월 허송만 한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아이들 셋을 낳고 가정을 이루고, 비록 큰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느낄만한 자랑스러운 없적은 없을지라도,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에 감사한다.

사실 말씀에서는 삶 속에서 어떤 세상적인 큰 성공을 이루는 것을 가치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창세기를 보면 이런 세상적인 업적을 이루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묘사가 되고, 오히려 계속 새로운 생명을 생산함으로 자손을 이어온 이들을 높이 평가한다.  주의 백성의 귀한 세대가 이어지고 이 땅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충만해 지기 때문이다.

내일 말씀은 더욱 확실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지만, 오늘 주어진 구절은 그 가치에 대한 첫째 모습을 보여준다. 

16절을 보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는데, 원어로 보면 ‘카이로스를 사오라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카이로스는 일반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와는 다른 시간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때를 보통 의미한다.  ‘사오다’는 영어로는 redeem 헬라어로는 엑스아고라조 라는 말로 ‘에크’와 ‘아고라’의 합성어인데, ‘아고라’는 시장 혹은 비즈니스를 의미한다.  그래서 매매를 뜻하는데, 값을 주고 합법적으로 무언가를 사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냥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값을 주고 즉 대가를 지불하고 사오는 것이다.  그래서 갈 3:13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말씀하는데, 이 ‘구속’이 바로 엑스아고라조이다.  주님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구속 (구해서 속함) 하셨다.

‘날들이 악하다’의 ‘악하다’는 포네로스 라는 단어인데, ‘엄청 고생하다, 압박을 받다, 위험하다, 몸이 아프다, 매우 좋지 않다’ 등의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고 의미있는 시간 즉 기회의 시간을 사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라.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하루 중에 그냥 보내는 시간, 별 의미 없이 웃고 떠드는 시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허송하는 시간 등이 얼마나 많은가..  어제나 오늘이나 계속 불경기라고 하고 집값과 생필품은 오르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상황이 좋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상황이 좋을 때가 얼마나 있었나?  우스갯소리로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고 하지만 보통 돈도 시간도 없다. ㅎㅎ

남는 시간에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려면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또 그 일을 방해하는 다른 일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절대적임을 말씀한다.  남는 시간이 아니라 먼저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뒤의 일들을 벌리라고 말씀한다.

허송세월하지 않고 카이로스의 기회를 붙잡으려면 주의 뜻이 무엇인지, 즉 주님이 뜻하시고 의도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라고 명한다.  그러면서 주님의 뜻에 대한 첫번째를 말씀하는데, 바로 술에 ‘취하는 것’은 ‘과도’ 즉 방탕한 것이니 대신 영 안에 충만해 지고 있으라고 명령한다.  즉 성령 충만이다.  재미있게도 영어에서는 ‘영’도 spirit 이라고 하고 ‘술’도 spirit이라고 부르는데, 적당량의 술은 약으로도 쓰기도 하고 삶에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취하게 되는 것은 과도한 것 즉 방탕한 것이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 플레르’은  더해도 과도하지 않다.  항상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뜻, 성령 충만을 위해 실천적으로 할 것은 바로 19 20 21 절이다.  즉 찬송 생활 특히 서로 화답하는 찬송 생활이고 우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는 것이다.  이것이 간단하게 보이지만 성령 충만을 위해서 그리고 카이로스를 붙잡기 위해서 또 허송세월하지 않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냥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시간을 허투르 보내는 것 같을 수 있지만, 그 자체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 모든 것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하나님과 아버지께 감사하는 생활도 주님의 뜻이다.  상황은 악하고 좋지 않지만 감사하는 생활이다.  상황이 악한데 감사하는 사람이 미워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한다면 불평보다는 감사가 당연하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세번째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서로 복종하라고 말씀한다.  주의 뜻을 따라 사는 것과 서로 복종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나?  답은 ‘하나님을 두려워 함’에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세대는 이미 망한 세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서로에 대해 배려하고 내가 누릴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서로 복종할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에 복종하지만 부모는 아이들의 어리숙함을 배려하고 위해서 희생하는 것 처럼 주의 권속 안에서 서로 복종함이 있다.  주님의 뜻이며, 성령 충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님, 주께서 보시는 가치는 세상 것과 다름을 봅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주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치있는 것이고, 또 서로 복종하므로 주께서 뜻하시는 관계를 이뤄가는 것을 원하심을 배웁니다.  오늘도 악한 날들 중 하나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카이로스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을 압니다.  값을 지불하고 의미있는 것을 먼저 할 수 있도록 모두 한 마음을 주시고 동역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