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는 마태복음으로 시작하는구나. 마태복음은 신비롭다. 처음에는 요한복음이 신비롭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마태복음이 더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마태복음의 원기록이 헬라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4복음서는 주님의 제자들이 쓴 것인데, 장성할 때까지 갈릴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제자들이 외국어인 헬라어로 경전을 기록하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물론 성령께서 도우시지만 성령께서는 사람의 어떠함을 분명히 사용하신다.)
요한이나 마가 정도야 당시 나이가 어려서 후에 헬라어를 습득했을 수도 있고, 누가는 워낙 똑똑하니 헬라어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태는 과연 친히 그의 복음서를 헬라어로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최근 마태복음을 히브리어로 쓴 것이 발견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마태 복음 히브리 본문에는 히브리어로만 가능한 언어 유희 (예를 들어 영어에서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뜻을 사용하는)가 다수 발견됐다고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원래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그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한글로 먼저 쓰여진 글을 영어로 번역할 수 있지만, 영어로 먼저 씌여진 것을 가지고도 한글을 잘 하는 사람이 한국식 문체와 속담 등을 가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의 원어가 히브리어일 가능성은 분명히 있는데, 마태복음의 많은 부분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쓴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오늘 말씀 마태복음 첫 장에서 찾을 수 있다. ‘~낳고 ~낳고’를 반복하는 1절-17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계보를 나타내는데, 유대인들에게는 많은 걸림돌이 된다. 마태 자신도 분명 유대인이었음에도 그는 1절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말하며 예수를 그리스도라 선언한다.
그런데 그 계보를 보니 헛점 투성이고 정결하지 않으며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에 대한 자부심의 헛됨을 폭로한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다말’이라는 여인의 이름을 포함시키고, 이방인에 기생 (창녀)인 라합, 이방인 중에도 가장 문제 많은 요압 자손 출신인 룻, 더우기 ‘밧세바’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우리아의 아내’라고 부르며 유대인들의 치부를 드러낸다. 이러한 면은 모두 공인하는 다윗까지의 족보이기 때문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후 14대 역시도 패배와 타락의 인물들을 열거한다. 마태는 이러한 인물들을 열거하며 유대인들의 선민 사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부끄러운 족보를 통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밝힌다. 그리스도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윗의 자손이어야 하고, 여인을 통해 탄생하게되는 예언을 성취한다.
소위 ‘순수 혈통’이라고 하는 한민족이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았을 때 조금 당황했었다. 아니, 한민족은 그렇다 해도, ‘민씨’인 나의 원 조상이 실은 천 년 전 중국으로부터 이주해 온 분임을 알았을 때 많이 당황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가인의 자손, 노아의 후손이며 족보 여기 저기 많은 부끄러운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부끄럽고 부정한 족보를 가진 나에게 그리스도께서 찾아 오셨다. 그의 말씀대로 내 안으로 오셨다.
주님, 내 삶 속에 부끄럽고, 구멍나고, 약하며 악한 부분들이 대부분임을많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점점 타락했던 적도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하지만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는 오히려 더욱 넘쳤음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내 족보의 마지막은 그리스도임을 선언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