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절에는 '마음의 허망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바울은 진리를 모르는 다른 이방인들이 이런 허망한 것에 행한다고 말씀한다. 바울은 롬 1:21에도 '...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라고 같은 단어를 쓰는데, 이 '허망'이라는 단어는 '마타이소'라는 단어가 어근으로 '힘, 진리, 성공, 결과 등이 결여 되다, 쓸모 없다, 목적 없다' 라는 뜻이다. 17절에는 '마타이오테스' 즉 '진리의 결여, 타락함, 가난, 약함, 열정에 대한 갈망' 등의 뜻이 있다. 이방인들은 열심을 내어 삶을 살고 어떤 성공을 이룬 듯 하지만 그것은 결국 마음의 허망으로 끝난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생명을 떠난 이들의 삶은 '방탕에 방임하'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뭔가를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쓸모 없게 되고 목적을 잃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배우고 제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행동 역시 예수님을 믿기 전에 하던 습관대로 살게 하던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한다. 주님을 믿어도 행동은 금방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습관과 삶의 스타일은 몸에 밴 것이라 금방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왜 바울은 '행동을 고치라'고 하지 않고 '옛 사람' '새 사람'이라는 말을 썼을까? 외적인 습관이나 행동을 고치는 것은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노력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공자나 맹자도 행동의 근원에 대해 '인'이나 '양심'을 말했듯이 행동은 그 자체가 근본이 아니라 인격의 문제 즉 '옛 사람' '새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새 사람'은 나의 어떤 새로운 각오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라는 인격이요 생명체이시다. 그리스도로 옷 입기 때문이다 (롬 13:14, 갈 3:27).
23절은 '그 보다는 너희 생각의 영 안에서 젊어지라' 고 하는데, '새롭게 된다는 것은 '젊어지다, 회춘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비밀은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에 있는데, 생각의 영이라는 말을 한다. 원어로 보니 '생각의 영'이라고 해석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냥 '그 영, 그 생각' 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를 회춘하게 만드는 것이 생각과 영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24절의 말씀을 보면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각자대로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새 사람' 즉 일반적인 각자대로의 새로운 삶이 아니라 특정한 '그 새 사람'을 말한다. 23절에서 '너희'는 복수인데 '새 사람'은 단수이다. 즉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개별적인 '새 사람'을 입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 사람' 즉 그리스도 또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라 믿는다.
주님,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많은 때 종교적인 노력을 하고, 또 실패하는 나를 보며 답답해 하고 짜증내고 하나님을 의심했음을 고백합니다. 새롭게 되고 또 주님을 따르는 문제가 인간의 노력에 있지 않음을 배웁니다. 옛 사람은 벗어 버리고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이 '새 사람'에 관심을 갖게 하시고 그 비밀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