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 외에도 마귀가 한 말도 있고 욥의 친구들의 어리석은 말도 있고 요즘 말씀처럼 역사를 기록한 것도 있기 때문에 항상 ‘좋은’ 말씀만 있지는 않다.  특히 오늘 큐티 본문을 이 아침에 읽으며, 좀 나를 살리는 말씀이면 좋겠는데 도무지 이러한 역사의 기록이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에 대한 기록인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기록인가 한탄할 정도로 15장은 부정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더우기 15장 한장에는 반역이 4번이나 일어난다.  한 장에 벌어지는 반역이 이렇게 많다니… 10절 살룸이 스가랴를 백성 앞에서 쳐죽이는 사건을 시작으로 살룸은 므나헴에게 쳐죽임을 당하고 또 그의 아들 브가히야는 베가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한다.  또 베가는 호세아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 이게 도대체 뭔가…  이건 더 이상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다.  왕좌를 얻기 위해 권모술수에 반역에 살인이 난무하다.

그러고보면 이러한 모습이 비단 과거 북이스라엘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기독교는 물론이고 미국 기독교 역시 ‘왕 같은’ 담임목사 혹은 교단 총회장 등의 자리를 놓고 가끔 벌어지는 일들의 내면을 보게 된다면 실망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마음 아픈 것은 그러한 일들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위 4번의 반역처럼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해설에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님 말씀의 부재, 간섭의 부재라고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롬 1:24 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28절에는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라고 말씀하며 하나님의 ‘내어 버려 두’심을 말씀한다. 

위 24 28절 말씀은 요즘 계속해서 시끄러운 동성욕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다.   나는 '동성애'라고 하지 않는데 그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임의식은 전혀 없고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이성 간에도 사랑이 있고 성욕이 있듯이 '애'가 아니라 '욕'이다.   미국에서 동성혼이 통과되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빠지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일부다처 다부다처 근친결혼 미성년과의 매춘, 동물과의 결혼 요구 등등 성적인 문제에서 계속 타락할 것이고 이러한 것에 대한 법적인 보호와 대우를 요구할 것이다. 

반역을 시작한 살룸이라는 이름은 샬롬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그 뜻은 완전히 다르다.  샬롬은 평강이라는 뜻이지만 살룸은 강력한 징벌 혹은 최후 심판이라는 뜻이 있다 (위키). 이러한 반역의 시작은 그 본질이 샬롬(평강)의 짝퉁을 보여주는 동시에 결국에 임할 하나님의 강력한 징벌 즉 최후 심판을 상기시켜준다.
 
이러한 가운데 그나마 요담이라는 인물이 좀 위로가 된다.  그가 그리 훌륭한 인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어두운 때에 아주 작은 불꽃 같은 존재라 빛이 강하게 느껴진다.  요담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정직하시다’라는 뜻이다. (위키)  즉 상황이 아무리 개떡같고 희망 없어 보여도 오직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며 모든 불의에 대해 심판의 기준이 되시도록 정직하시다.  어둠의 때에는 이렇게 온전치 못한 불꽃 하나라도, 즉 하나님을 인정하는 작은 불꽃이라도 강한 빛을 발한다.

주님, 타락은 한 순간임을 압니다.  그리고 한번 타락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떠나려는 절망과 유혹이 있음도 압니다.  하지만 정직하신 하나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붙잡게 하소서.  내 의지나 판단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이 아침에도 고백합니다.  오로지 주님의 간섭하심,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몸 버리신 그 공로를 붙잡습니다.  타락했을지라도 주께 돌아오면 다시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발을 주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