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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히 12:6-10)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산당은 그 모습이 바뀌었을뿐 지금 기독교에도 만연하다. 그리고 제거 되지 않는다... 종교적인 만족을 위해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이 산당은 기독교 내의 정치적 안녕을 위해 건드려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러 왕들의 이야기를 보며 악행의 시작과 본을 보인 여로보암과 악을 행하기에 열심이었던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그들의 악행을 따른 여러 왕들, 그에 반해 바알과 아세라를 부수고 찍은 몇몇 왕들.. 하지만 정작 산당까지 없앤 왕은 히스기야 요시아 아사왕 정도인 것 같다.
산당은 혼합주의 대표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에서 산당을 없애면 과연 얼마나 교인들이 남을까... 종교적인 만족을 위해 산당은 허락되어야 하나 아니면 교인들이 얼마 남지 않더라도 산당은 제거 되어야 하나..
확실한 것은 기독교인은 산당이 필요해도 그리스도인은 산당을 허문다.
여러 왕들의 이름 가운데 계속해서 오르는 친숙한 이름 바알... 제거했다 또 세웠다, 찍었다 또 만들어 지기를 얼마나 반복하나...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친숙한 어두움은 주님의 빛으로 밝혀서 쫓아내야 한다.
주님, 내 안에 찍었다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는 바알과, 주님과의 교제보다는 종교적 책임과 만족 그리고 주술적 행위의 산당적인 요소가 사라지지 않음을 봅니다. 주께서 다스리시고 심판하소서. 주의 영광과 거룩하심만이 우리를 덮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