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 수훈의 시작을 천국의 행복과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정체성을 말씀하신 후에 주님께서는 갑자기 율법과 선지자를 말씀하신다. 여러 말씀하신 내용을 마태가 편집했을 수 있지만 갑자기 바로 율법과 선지자에 대해 말씀 하신 것은 좀 이상하다.
구약은 ‘율법과 선지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율법은 로마서에서 얘기하는 모세 오경 특히 계명을 가리키는 것 보다는 구약 하나님 말씀 전체를 의미하는 것 같다. 단지 지켜야 할 계명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바로 다음 18절에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는 말씀은 필요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8-10장에는 옛 언약의 불완전함에 대해 말하고 그것의 완성으로 주님께서 오심을 말한다. 또한 롬 8:4에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는데, 이 ‘이루어지게’가 같은 단어를 썼고, 마찬가지로 롬 13:8의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에서도 같은 단어가 쓰였다. 주님은 율법, 즉 하나님 말씀을 완전하게 하시는, 마치 마지막 퍼즐 조각 처럼 전체를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당신 자신이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을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인 ‘천국’은 그 ‘계명 (19절)’의 수준이 구약보다 훨씬 더 높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높은 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 뿐만 아니라 ‘지극히 작은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하나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사막 횡단에 성공한 사람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인터뷰해보니 뜨거운 태양이나 밤의 추위가 아니라 신발 속으로 스며드는 작은 모래 알갱이라고 말했단다. 지극히 작은 것에서 사람들은 상처받고 실패한다.
그 지극히 작은 하나에 대해 첫째로 살인을 말씀하는데, 구약에서는 물리적 행위가 살인이었지만 이제 천국 패러다임은 살인이 마음의 문제이고 형제에게 노하거나 혹은 욕을 하는 것 조차도 살인과 동등하며 그 벌이 중한 것을 말씀한다. 더우기 단지 살인만이 아니라 다툼이나 송사에 휘말리게 된 것 조차 형제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기에 그러한 문제를 먼저 해결한 후에 종교적인 의무도 행하고 내 몸도 건사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주님, 천국의 계명은 '지극히 작은 하나'의 문제임을 배웁니다. 이 지극히 작은 하나 때문에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은 때가 많음을 기억합니다. 부족하고 악한 저의 기준이 아니라 주님의 높은 기준이 이 지극히 작은 하나에 적용되게 하소서. 이러한 것은 큰 부담이지만, 우선 제가 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다시 고백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하나 하나 할 수’있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또 ‘이 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라는 주님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온전하지 않기에 온전하신 말씀을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