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 7절에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에서 첫번째 ‘찾으라’의 원어는 ‘제테오’라는 단어로 ‘추구하다, 갈망하다’의 뜻이지만, 두번째 ‘찾을’의 원어는 ‘휴리스코’라는 단어로 ‘무언가에 도달하다, 찾아내다, 발견하다’ 등의 뜻이 있다.  그런데 오늘 말씀 14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의 ‘찾는’은 두번째 ‘휴리스코’이다.  즉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고 발견하게 되는 것’임을 말씀한다.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은 빤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열심히 추구해야 발견하게 되는 것임을 밝히신다.
세상이 향하는 일반적인 큰 문과 넓은 길은 힘을 내어 찾지 않아도 빤히 보이는 길이지만, 주님께서 우리로 들어가고 걷기 원하시는 문과 길은 잘 보이지가 않아서 갈망함으로 추구해야 발견하게 될 수 있다.  산상수훈을 마무리 하는 부분에서 주님은 다시 천국의 비밀스러움을 말씀하고 계신다.  천국은 죽어야 갈 수 있는 곳이나 아니면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어떠한 것이 아니라, 회개 하고 추구 해야 하며, 주님께서 보여 주셔야만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또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요 3:3-5). 
그렇기에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참으로 그 천국을 보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했으면서 마치 그런 것 처럼 다른 이들을 미혹하는 이들이다. 주님은 이들에 대해 ‘노략질하는 이리’고 열매로 그들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22절에는 이들에 대해 더 말씀하시는데, 이들은 주님의 선지자들로서 행하지 않고 ‘선지자 노릇’을 했다.  그런데 원어에는 ‘노릇’이라는 말은 없고 ‘주의 이름으로 (이름을 향해) 예언했다’는 말을 한다.  주님의 사역은 주님의 이름 ‘안에서 (en)’ 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기도 역시 ‘주의 이름 안에서’ 해야 하는데,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예언이라는 것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까지 해 내었다.  원어의 ‘to’와 ‘en’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나는 지금 to인가 아니면 en인가?  나는 예수님 이름 안에서 기도하는가 아니면 그냥 주의 이름을 나중에 갖다 붙이고 도용하는가?
주님은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임재와 다스림 안에, 그의 말씀 안에 있지 않고 종교를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자신의 제자들을 육성하며 자신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
이 모든 말씀 후에 결론적으로 주님은 주의 말씀이 곧 ‘법’이며 이러한 법을 떠나서는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오직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주와 함께 걸어야 한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보다 지금 주와 함께 걷기 원해
답답하고 힘들어도 주의 비밀 추구해요
좁은 문과 협착한 길 바로 주님과 함께 걷는 것
주 이름 안에 있음으로 주를 발견하고
또 주 안에서 발견되기 원합니다
주님, 주의 거룩하신 이름, 그 인격과 성품 안에 있기 원합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고생의 길을 걷는다 해도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그 역시 넓은 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