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 중 16-17 말씀에 관심이 간다. 동일한 내용이 소위 공관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주요 단어는 생베 (새로운 옷감), 낡은 옷, 새 포도주, 그리고 낡은 가죽 부대 라는 단어다. 해설에서는 율법 시대와 은혜 시대의 차이라고 말하는데 조금 더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재미있는 것은 원어에서 생베의 '생' 즉 '새롭다' 라는 단어와 새 포도주의 '새'라는 단어가 다르다. 우리 말이나 영어로 하자면 그냥 new라고 하겠지만, 원어에서 생베의 '새'는 '아가나뿌'라는 말로 not을 뜻하는 a와 '그나뿌스'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새 포도주의 '새'는 시간적으로 혹은 상태적으로 어리다, 새롭다 등의 뜻인 '네온'을 쓴다. 이런 면에서 이번 구절을 모두 new라고 번역한 킹제임스역 보다 생베를 'unshrunk'라고 한 NIV가 오히려 원어에 가깝다.
그래서 '낡은' 이라는 단어를 보니 둘 다 동일한 단어다. 아마도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낡은' 이라는 단어는 '팔라이오스'라는 단어로 물론 시간적으로도 오래됐지만 동시에 상태적으로도 매우 낡은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로마서 6:6와 엡 4:22, 그리고 골 3:9 에서는 '옛 사람', 고전 5:7,8에는 '옛 누룩' 고후 3:14에는 '옛 언약 (구약)' 그리고 요1 2:7에서는 '옛 계명' 등으로 나온다. 즉 모두 낡고 쓸모 없고 효력이 없어진 것들,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하고, 옛 누룩과 옛 언약에서 벗어나며, 옛 계명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나와서 천주교를 구교라고 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을 '신교'라고 하지만 얼마나 천주교의 많은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가? 과연 개신교는 주님을 위한, 주님의 은혜의 가죽 부대가 되고 있는가? 새 포도주를 담을 새 가죽부대가 되지 못하면 터져버리지만, 은혜의 새로운 언약을 올바로 영접할 때, 은혜는 물론 주의 몸된 교회 둘 다 보전된다.
주님,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많은 것에서 오래된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을 봅니다. '이는 묵은 것이 좋다 (눅 5:39)'라며 옛 썩어져 가는 것, 우리의 죄성이 선호하는 것, 우리의 옛 습관에 익숙한 것들에서 안주하지 않도록, 우리로 주님의 새롭고 왕성히 발효하는 새 포도주를 받게 하시고, 또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새 가죽 부대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