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부터 오늘 말씀의 많은 부분은 주님께서 여러 가지 병을 고치시는 이야기를 다룬다.  치유 사역은 주님의 사역 중 큰 부분을 차지 했다.  그런데 소위 ‘치유 집회’를 가 보면 성령의 이름으로 사기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치유 집회를 일부러 가지는 않지만 집회를 가다보면 치유 사역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위 ‘치유’를 하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주님께서 하신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집회를 통해서도 나았다는 말이 돌기는 하지만, ‘치유’라는 것과 그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아마도 거의 10년 전 쯤 주일 집회를 가니 어느 젊은 목사가 간증을 하며 치유 사역을 했다.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 어디가 치유받았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여기 저기서 아멘 아멘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서 보던 무당 푸닥거리 같은 치유 사역 보다는 정말 깨끗하고 좋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사람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 보다는 사람들이 올려 놓은 손의 위치를 보고 치유를 선포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나쁜 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기만 당하는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손을 올려 놓았었고 나 역시 머리에 손을 올려 놓았었는데, 강사가 ‘두통, 편두통이 나았습니다’ 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두통이 아니라 벌써 몇 년 째 낫지 않는 심한 비듬 때문이었다. (흠.. 이 나눔을 읽고 웃을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심각함. ㅎㅎ)  나중에는 그냥 약 바르는 것이 더 낫게 생각되어 손을  머리에서 내려 놓았다.  물론 오늘 말씀처럼 주님은 치유를 하시기 전 먼저 믿음을 확인하셨던 것 처럼, ‘어디 어디가 나았습니다’ 라고 선포할 때 사람들이 믿음으로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치유 자체가 주님께서 오신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주 치유에 대해 함구하라고 명하셨다.  치유 자체라면 의사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귀신 쫓는 것 역시 바리새인 아들들도 웬만큼 할 줄 알았던 것 같다 (마 12:27).  그래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치유의 목적 중에 큰 부분은 바로 천국의 임재이다 (35절).  병을 고치는 사역과 함께 귀신을 쫓아 내시는 사건들이 나타나는데, 약한 것과 악한 것은 동시에 나타나고 바로 이러한 것들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고 천국을 선포하는 것이 주님의 사역이었다.  치유가 나타날 때 천국이 임했음이 증거되고 주님께서 절대적 주권자 곧 천국의 주인이심을 증거한다(마 20:1).  그래서 믿음과 치유와 천국은 함께 간다.

 

주님 내게 말씀하시고 나 만지시기 전

날 찾아 오시고 내게 믿음 주셨네

주님 날 찾아 오시기 전 날 먼저 아셨고

창세 전 부터 나를 택하셔 주의 왕국 되게 하셨네

주는 치유하시는 자, 주는 다스리시는 분

예수 내게 천국 되시니 나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있네

 

주님, 병 들었을 때 나으면 앞으로 주님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결심했어도 또 다시 주님과 관계없는 시간들을 보냈던 것을 기억합니다.  병이 있건 없건 주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것이 진정한 치유임을 믿습니다.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치유함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주님의 천국과 은혜 아래서 새로운 법이 들어옴으로 모든 정죄함이 없어진 것을 오히려 선포합니다.  천국의 법이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기를 배우기 원합니다.  그 말씀이 삶에서 살아지기 원합니다.  오늘 주님의 치유 사역의 도구로 쓰임 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