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촌이었고 주님의 사역을 예비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그 둘 사이에 모종의 담합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니 침례자 요한은 사촌이라는 관계 보다는 하나님의 계시하심을 따라 주님의 길을 예비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메시야의 모습이 자신의 예상대로가 아니었기에 옥 중에서 제자들을 보내 주님께 여쭙는다.

주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심판주 그리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만왕의 왕 모습 이전에 '천국'을 가지고 오시는 분임을... 재미있는 것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고 기록한 6절의 '실족'의 원어는 '스칸달리조'라는 단어로 영단어 '스캔들'의 어원이다. 그 뜻은 '길에 사람들을 넘어지게 할 수 있는 돌을 놓다, 죄짓게 유혹하다, 의심하게 하다, 타락하게 하다'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지난 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에서도 같은 말이 쓰였다.

그런데 주님 때문에 실족할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침례자 요한의 예처럼 자기가 바라던대로 되지 않거나 예상했던 주님의 모습이 아닐 때 사람들은 낙담하고 푸념하며 실족할 수 있는데, 주님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고정 관념과 아집 때문이다. 주님을 따른다고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사실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나를 보여 주신다.

주님은 11절에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흠.. 사실 '여자가 낳은 자'라는 말은 주님에 대해 쓰는 말이 아닌가? 갈 4:4에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이라고 기록하며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후손으로 남자에게서 낳지만 주님만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음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원어를 보니 이해가 간다. 11절의 '낳은'은 '게네토스'라는 단어로 말 그대로 '낳다, 태어나다'의 뜻이지만, 갈 4:4의 '나게'는 '기노마이'라는 단어로 '되다, 생기다, 발생하다, 만들어지다'의 뜻이며, 요 1:14 '말씀이 육신 되다'에서 같은 단어로 쓰였고, '독생'하신의 '생'도 같은 단어다. 모든 인류는 아담의 자손으로 아담의 씨를 가지고 여자를 통해 (에크) 태어나지만, 주님께서는 여자의 몸을 빌려 육신으로 오셨다.

아무튼 이러한 침례자 요한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물이라고 하신다. 응? 그럼 알렉산더 대왕이나 고레스 느붓가네살 등 여러 왕들, 거기에 아브라함이나 모세보다 크다고? 물론이다. 요한은 사람들 바로 앞에서 주님에 대해 확실히 메시야라고 증거한 사람이다. 우주보다 크신 주님을 바로 앞에서 증거했기 때문에 그 모든 사람보다 크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큰데, 주님을 가리켜 메시야라고 했던 요한에 비해 우리는 주님을 믿고 영접하고 그 영이 우리 안에 계시고 후에는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 (요일 3:2)'이기 때문이다.

12, 13절도 또 신기한 구절이다. 침례자 요한의 때 (원어 날들, 복수)부터 주님 말씀하시던 당시까지 하늘의 왕국이 침노를 당했고 침노하는 자들은 천국을 채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과연 이게 무슨 뜻일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천국을 향해 전진해야 천국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데 전혀 그 반대일 수 있다.

11절 말씀 후에 12절은 '그런데' 라는 접속사 '데'가 있다. 즉 앞절과는 좀 다른 내용이라는 것이다. 침노라는 단어보다는 '빼앗다'라는 단어 '하르파조'라는 단어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성경에 약 17번 나오는 단어로 긍정적 부정적 모두 쓰였지만 뒤에 13장 19절 씨뿌리는 비유에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의 '빼앗나니'와 같은 단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귀가 빼앗은 것과 천국을 빼앗는 것과 연관이 있다.

요한의 처음 선포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던 것 처럼 요한의 사역 역시 주님처럼 천국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의 사역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기득권자들에게 계속해서 많은 도전을 받고 '빼앗겼다'. 하지만 천국은 빼앗을 수 없다. 겸손한 자들이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13절 말씀이 좀 이해가 가지 않는데 구약을 의미하는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고 한다. 하지만 다니엘의 예언도 아직 모두 성취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구약의 예언이 시간적인 의미로 요한까지라는 말씀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잘 읽어보고 여러 번역과 헬라어를 보니 '요한까지가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전부'라는 뜻 같다. 같은 말로 들리지만 그 차이는 선지자와 율법은 요한까지라는 것이다. 즉 요 1:17에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는 말씀이다.

주님, 예상을 벗어나는 주님의 사역은 사람들을 스캔들로 이끌었던 것을 봅니다. 자신들의 잣대로 요한을 귀신들렸다고 하고, 주님은 먹는 것을 좋아하고 포도주를 즐긴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시야가 있는 사람, 천국을 갈망했던 겸손한 이들은 주님의 어떠하심을 볼 수 있었던 것을 배웁니다. 내가 바랬던 주님의 모습이 아닌 것을 오히려 감사합니다. 주님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천국이신 주님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