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대한 비유가 오늘 끝나는구나. 천국은 비밀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천국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첫째 겸손함으로 주님 앞에 묻고 둘째 그를 믿는 것이다. 58절에는 그의 고향에 돌아 오셔서는 능력을 행하지 않으신 주님을 보는데, '못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셨다. 능력을 행하시는 이유는 믿음을 위해서인데 주님을 아예 믿지 않고 배척을 하면 주님께서는 인생 속에서 능력을 베푸실 필요가 없다. 우리가 믿을 때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또 믿을 때 천국을 알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앎은 우리로 더욱 믿게 한다.

아무튼 어제 말씀에 이어 오늘 모든 비유에도 '호모이아 에스틴' 즉 '마치 ~같다'로 말씀하신다. 천국에 대한 분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전에는 이 사람이 복음을 듣고 자신의 삶을 모두 주님께 헌신하는 하나님 백성 혹은 제자로 이해했다. 그것도 틀리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이해하면 한 개인의 헌신이 되는데, 이 비유는 '천국'에 대한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데 다음 비유에도 비슷하게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나오는데 이 둘 모두 '자기 소유를 다 팔'았다. 즉 '파는 것'에 비밀이 있다.

'자기 소유'가 있고 또 이를 '다 팔'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죄인된 우리는 죄의 노예이기에 소유권이 없고 그래서 팔 자격도 없다. 오직 죄없으신 주님만이 참된 소유권이 있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구속 redeem'하셨다. 그리고 그 '보화'만이 아니라 '밭' 즉 세상을 사시고 또 극히 값진 진주를 사셨다. 주님의 구속 사역은 세상에 숨겨진 보화인 천국을 발견하고 당신의 생명을 내려놓는 값을 지불함으로 사신 것이고 동시에 부활을 의미하는 진주 즉 부활을 통하여 생겨난 교회를 사셨다.

이 두 비유는 어제 비유와는 다르게 천국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바로 다음 비유에서는 또 다시 부정적인 모습을 본다. 그래서 '마치 ~같다'를 잘 분변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천국이 단지 아름다운 천당을 의미한다면 심판도 언급할 필요없고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는 것도 필요없다. 하지만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다고 말씀한다. '바다'는 이방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이방에 대해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을 천국과 비교하신다. 즉 이 '천국'은 유대인들만 대상이 아니라 바다인 이방에도 미친다. 그 이방 중에도 주님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데 우선 그물로서의 천국에는 많은 이들이 들어오지만 후에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51절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으시자 제자들은 '그러하오이다' 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들이 이 모든 것을 깨달았을까? 주님께서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정말이냐? 내가 한번 테스트 해볼까?' 라고 하지 않으시고 마지막으로 다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신다.

보통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부정적으로 비춰지지만 이 구절은 마지막으로 천국을 말씀하시며 '제자 된 서기관'에 대해 언급하신다. 사실 서기관들은 성경 학자들인데, 특히 구약의 모든 성경을 필사 기록하고 연구하는 이들이다. 즉 이들은 '로고스' 말씀을 항상 접하는 이들이다. 52절이 원어에는 '그런데 (혹 그러므로) 이것 때문에 하늘의 왕국 안으로 제자가 되는 각 서기관들은 마치 그의 보고 (보물창고)로부터 새것과 옛것을 내오는 집 주인과 같다' 라고 되어 있다.

이 부분을 추가 말씀하신 것 특히 '그러므로'는 위의 여러 비유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제자들에게 '깨달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한 것일까? '그러므로'라는 단어인 '데'는 '그런데'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러고보니 앞의 비유에 대한 추가 설명도 되고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서기관'이라는 지위 자체가 지금 주님과 함께 다니는 제자들과 격이 맞지 않아서이다. 지금 제자들이 어부 출신이라면 그들에 비해 서기관들은 학박사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서기관들이 제자가 될 때 '그의 보고에서 새것과 옛것을 내오는 집 주인과 같'아 진다. 다시 한번 눈여겨볼 것은 '제자된'이라는 단어인데, '마떼투띠스'라는 단어로 수동태의 부정시제를 썼다. 즉 이 서기관은 당시 존재했던 서기관들을 포함해 성경을 연구하는 모든 이들 중 주님의 제자된 이들을 가리킨다. 천국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읽고 묵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여 그 보고에서 귀한 것들을 내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바로 그러한 이들이다.

이들은 '새것과 옛것을 내오는'데, 이 '내오다'는 단어는 '엑발로'라는 단어로 '밖으로'의 뜻인 '에크'와 '던지다'의 뜻인 발로의 합성어인데, 이 '발로'는 바로 앞 그물을 '치고'에서 쓰인 단어이다. 그런데 '에크'를 앞에 붙여서 '던지다, 보내다, 힘으로 밀어 붙이다, 끌어내다, 갈라내다, 찢다' 등의 다소 과격한 표현도 있지만, 동시에 '어떠한 것에서 다른 어떤 것을 유출해 내다' 의 뜻도 있다. 문맥으로 보니 여기에서 '새것과 옛것'에 대해서는 이러한 뜻인 것 같다.

'새것과 옛것'의 '새' '옛'은 9장 17절의 '새부대 헌부대'에서 쓰인 같은 단어인데, 서기관 같은 이들이 존재해서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해 부지런히 그 뜻을 살피는 것이 있음을 말씀하는 것 같다. 분명 새로운 언약은 옛 언약을 끝냈지만, 우리에게 아직도 구약의 말씀이 필요한데, 새 언약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의 여러 말씀에서 계속해서 말씀해 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천국이신 주님께서 그 비밀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힘을 다해 부지런히 모든 보화가 숨긴 이 보고에서 귀한 것들을 찾아내는 제자들이 있음을 또한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사모함을 주시고 또한 깨달음을 주소서. 그럼으로 주님을 더 얻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