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전 15:10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고백을 한다. 이러한 고백은 말씀 그대로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던,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오늘 범위에서 다루는 내용은 백 마리 중 잃은 양 한 마리, 교회의 치리, 기도함, 주님의 임재 등이겠다. 이러한 여러 내용은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만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함축이 되는 것 같다.
양 아흔 아홉 마리는 그대로 두고 (눅 15:4는 들에 아예 방치해 두는 모습도 보인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지만 목자의 마음 즉 주님의 은혜를 보여준다. 나도 잃은 양이었고 제멋대로 길을 갔지만 주님께서 목자처럼 두루두루 찾아 우리 안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기뻐하신다'!
‘교회’라는 단어가 16장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주님께서 처음으로 꺼내신 후 두 번째로 나오는데, 주님께서는 헬라어 ‘에클레시아’ 라는 말보다는 아람어로 말씀하셨을텐데 어떤 단어를 쓰셨을까? 제자들은 그 처음 듣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런데 잘 들어보면 ‘교회’가 곧 다음 18절에 나오는 ‘너희’와 같다는 느낌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을 연결시키신다.
본의 아니게 이제껏 여러 교회를 다니다 보니 가끔 ‘치리’라는 상황에 접하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고 짜증나고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 ‘치리’에 대해 성경적이지 않고 형평성도 없었던 것을 본다. 도무지 주님께서 명하신 이 치리의 방법을 그대로 행하는 교회 행정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다. 그냥 목회자 한 사람에 의해서 혹은 당회 선에서 ‘치리’ 아닌 '처리'를 한다. 초대 교회에서 얼마나 이러한 치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마지막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단계까지 갔던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 이것은 교회의 치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이 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최종적인 치리를 한다. 이러한 치리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또 보여준다. 교회에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치리'하기 어려우니… 교회에 정말이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고 분란만 일으키는 이가 있다면 그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주님은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라고 말씀한다. ‘진실로’는 ‘아멘’인데, 19절에는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른다’ 즉 ‘아멘으로 거듭 말한다’고 하시며 너무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시키신다. 이러한 중요한 말씀은 무엇인가? 바로 ‘너희’ 즉 믿는이들이 교회로서 묶던 풀던 하늘에서도 그렇게 된다고, 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대부분 한글 번역은 물론 영번역에도 ‘먼저 우리가 묶든 풀든 (그 결과로) 하늘에서도 그리된다’는 식으로 번역했는데, 헬라어 원어에는 시제가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공동번역개정판’이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라고 원어에 가까운 번역을 했다. ‘쉬운 성경’도 비슷한 번역을 했다. 영번역 중 HCSB에서는 ‘I assure you: Whatever you bind on earth is already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is already loosed in heaven.’ 라고 번역을 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너희가 묶고 푸는’ 것에 대한 시제는 아오리스트이고, ‘하늘에서도 묶이고 풀리는’ 것에 대한 시제는 과거완료형이다. 하지만 ‘풀리게 될 것이다’의 ‘될 것이다’는 미래형이다. 즉 시간을 초월해서 교회로서 이 땅에서 묶고 푸는 사역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데, 미래형이면서 동시에 보니 이미 묶여졌고 풀려진 것임을 말한다. 이것은 주체가 우리에게만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교회로서 주님과 함께 사역하여 묶어야 할 것을 묶고 풀어야 할 것을 풀었지만, 후에 보니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묶임을 받았고 또한 풀림을 받았던 것임을 발견한다.
그래서 우리의 섬김과 사역은 ‘전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두 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에 있고, 이에 따라 하늘에서 이미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에 대해 담대히 구하고 또 취하는 실제가 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눅 17:10에서 섬기는 자들의 태도가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고백이 되어야 함을 말씀한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다.
주님, 정말 주님의 말씀은 완벽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온전하신 계획 안에 잃은 양 하나를 찾으시고, 죄 지은 자에게도 분에 넘치는 기회를 주시며, 사역자들의 섬김도 하늘에 속하게 하십니다. 오늘 나와 합심하여 기도하는 한 두 사람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별것 아닌 일상적인 기도나 섬김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들을 이 땅에서 이루는 기도와 섬김 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