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있었다. 10억을 지불한다면 1년간 감옥생활을 하겠느냐는 설문에 절반 이상의 청소년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청년 백수 문제가 심각한 시대에 1년간 눈 딱감고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면 1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목돈이 생기는데 마다할 것이 없다는 논리다. 청소년들에게까지 이미 뿌리내린 황금만능주의의 폐단을 본다.
부자들은 계산이 빠른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부를 지키기 힘들다. 아니면 적어도 계산이 빠른 사람들을 고용해야 한다. 오늘 말씀에 젊은 부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그의 부를 오래 누리며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님께 '영생을 얻으려면 뭘 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다. 그가 어떻게 부를 이뤘는지 모르지만 '행함'으로 영생도 얻어보겠다는 생각이다. 결국 주님은 '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이 청년은 주님의 말씀에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리고 계산했을 것이다. '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거기에 자기를 따르라고?'
지금 자신의 부를 영원토록 누리고 지키기 위해 영생이 필요한 것이지 다 팔아서 열심히 살지도 않는 게으르고 가난한 것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부족해서 별로 권력이 있어보이지도 않는 이 젊은 랍비를 따르라고? 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이 사람이 청년이 아니라 다 늙어 죽어가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지체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따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님은 다 늙어 죽어가는 부자는 부르지 않으신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만든 영화 '게임'이나 이와 비슷한 미국 영화 'Selfless'를 보면 세월 앞에 재물은 정말 헛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 청년은 계산은 빨랐지만 그의 계산은 틀렸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생은 아무리 세상의 부가 많아도 우리의 죄된 모습으로 죄 가운데 영원히 사는 저주, 즉 시간적인 영원성 보다는 그 영원한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어떠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주의 영원하신 생명을 추구하면서도 삶 속에서 얼마나 이 부자 청년같은 계산을 하는지요.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아직 유효할 때에 응답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