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세 번 나오는데, 어제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즉 세상과 결탁한 종교인들의 시험이었고, 오늘 말씀은 영적인 것을 믿지 않는 유물론적 철학자들인 사두개인들, 그리고 내일 말씀은 영적인 것은 믿지만 종교로 끝나 버리고 결국 주님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의 시험이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는 추상적인 개념이 있기는 해도 거의 유물론적 사상에 의해 움직인다.  비단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일부러 잊으면 유물론적 관점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 중 두드러진 것이 바로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왠만한 믿음 아니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인데, 단지 ‘매우 긴 세월’이라는 가설을 토대로 모든 것을 조작해 보려고 안간힘들을 쓴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으로는 영적인 것을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데 바로 오늘 말씀 사두개인들의 경우다.  그들의 질문의 본질은 일곱 형제 중 과연 누가 그의 아내가 될 것인가에 있지 않고, 부활이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마음을 간파하시고 주님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라는 대답 이전에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그들을 폭로 하신다.  사두개인들도 ‘모세’ 운운하며 뭔가 아는 척 했지만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다.  마치 성경 말씀을 두어 구절 ‘이용’하여 표를 구걸하는 선거 후보인이나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 같다.  그래서 막 12:27에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고 기록하며 ‘크게 오해하였도다’라고 한 번 더 말씀하신다.

그런데 30절의 말씀이 쉽지 않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하셨는데, 마지막 날에 부활하면 지구 상에서 살던 모든 관계 특히 가정으로서의 관계는 끊어지는가?  그렇게 들린다.  그러면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데 이러한 질문 역시 하나님의 능력과 부활을 잘 몰라서 하는 질문이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나타내며 함께 살지만, 10:36에서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이미 말씀하신 것 처럼 주님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다.  그 날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모든 이들이 참된 가족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땅의 가족으로서의 연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바로 오늘의 그 참된 가족이 된다.  그래서 이 땅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천사들과 같게 된다.  사람이 천사가 될 수 없고 천사 역시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천사들과 같다’는 말씀은 그런 의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부활에 대해 오해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2절)” 라고 한 수 가르쳐 주신다.  성경을 아는 체 하는 그들에게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물으시며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땅에서 죽어 사라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름을 언급하시며 그들이 이미 죽었지만 현재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한다.  즉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미 부활한 이들이 된다.  특히 ‘나는 ~이다’의 ‘에고 에이미’를 말씀하시며 당신이 바로 그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밝히신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씀에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란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어떻게 이해했기에 놀랐을까?  아마도 그들 역시 부활에 대해 그렇게 생생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냥 부활이 있는가 보다 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부활이 실재요 하나님께는 사망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롬 4:17에는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기록한다.  인간에게는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능력 있는 분이시다. 

주님, 이 땅에서의 갈등과 아픔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망의 권세에 대해 주님의 부활 생명과 능력으로 이기기 원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 수 있도록 능력 베푸소서.  하루 하루 믿음을 시험 받지만 실패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산자의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