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는 예수를 은 삼십 세겔을 받고 배반하여 팔았다.  주님을 팔았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지만, 유다에게 예수님의 가치는 고작 은 삼십 세겔이었다.  당시 한 세겔은 데나리온 넷 즉 4일치 품삯이기에 120일, 약 석달치 봉급과 같다.  삼년 동안 예수님을 좇았지만 유다에게는 예수님이 석달치 봉급의 가치 밖에는 되지 않았다.

이 은 삼십은  출애굽기 21: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는 말씀에 의하면 노예 값이다.  다음 장 27:9에서는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라고 하며 보통 이스라엘에서 종의 가격이 삼십 세겔임을 말한다.  가룟 유다에게 있어 예수는 주가 아니라 자기의 야망을 위한 수단, 노예 밖에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룟 유다와는 정반대의 경우를 본다.  4복음서 모두 비슷한 사건을 기록하는데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시간, 장소, 누가 무엇을, 부은 곳, 제자들의 반응, 주님의 반응)

마태 26 - 유월절 이틀 전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 /한 여자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 / 머리 / 제자들이 분개, 비싼 값 / 칭찬, 장례, 복음 전파에 추가

마가 14 - (매우 순전한 나드 한 옥합 / 머리 / 분개, 삼백 데나리온) 모두 같음

누가 7 - 바리새인 집 /죄를 지은 한 여자, 향유 담은 옥합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발에 46절) 향유를 부음

요한 12 - 유월절 엿새 전 / 베다니 마르다 집 / 마리아,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가룟 유다 분개, 삼백 데나리온 / 칭찬

비슷한 내용이지만 장소와 인물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내용은 아니다.  확실히 누가복음의 내용은 ‘죄를 지은 한 여자’의 사건이며 제자들은 전혀 분개하지 않았던, 시간적으로는 제일 처음 일어난 사건이다.  문제는 요 12장 사건과 마태 마가 복음 내용이 너무도 닮았다.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록한 것일까?

그런데 잘 보면 요12장은 유월절 엿새 전 사건이었고, 마태 마가의 기록은 동일한 것으로 유월전 이틀 전 사건이었다.  요 12장 내용에는 가룟 유다만 분개했지만 마태 마가의 내용에는 제자들도 분개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이제 이해가 된다.  유월절 엿새 전에는 가룟 유다만 분개했듯이 가룟 유다에게는 삼백 데나리온이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나흘 뒤에 같은 사건이 또 벌어졌을 때, 이제는 제자들 조차도 ‘추가’로 삼백 데나리온이 ‘허비’된 것에 대해 아까워했다.  은 삼십으로 예수를 판 유다에게 삼백 데나리온은 예수의 가치를 기준 초과한 것이었고, 제자들에게는 삼백 데나리온까지는 허용됐지만 그것이 두 배가 될 때 ‘허비’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여인들에게는 300일 임금인 삼백 데나리온은 그 훨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순전한 향유는 돈이 있다고 아무때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혼인을 위해 오래부터 준비해온 것, 자기 자신의 전부이다.  그래서 주님은 복음이 전파될 때 이렇게 ‘올인’한 것을 함께 전파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올인’하셨듯이, 복음은 그 받는 이들에게도 ‘올인’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주님께 얼마의 가치를 두고 있나?

주님, 저의 삶 속에서 주님을 얼마나 팔아먹었는지요..  은 삼십이 아니라 몇 달러에도 팔아먹었을 때도 있었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복음의 그 크신 구원을 더 깨닫게 하시고, 정말 별 가치 없는 제 존재라도 주님께 올인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 주소서.  오늘 작은 것에서부터 주께 올인할 수 있도록,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가치를 제게 더욱 보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