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번역에는 금방 나타나지 않지만 영번역에서는 번역에 따라 오늘 범위에서 will이라는 단어가 12번까지도 나온다.  어떤 번역에서는 미래시제로shall을 쓰기도 했지만 will을 썼을 경우 12번이나 나온다.  미래 시제로 쓰인 shall 혹은 will 중에 나의 의사에 관계없는2-3번의 미래 사건을 뺀다해도 9-10번의 will이 나온다.

Will은 ‘~할 것이다’의 뜻이며 동시에 의지를 의미한다.  더욱이 ‘유언’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매우 강한 의지라는 뜻을 내포한다.  문자적으로 ‘의지’를 뜻하는 will은 ‘뗄로, θέλω(39절)’라는 동사와 거기에서 파생된 명사 ‘뗄레마, θέλημα(42절)’가 나온다.  ‘뗄로’는 신약에서 ‘하나님의 뜻’에서 많이 쓰였다.  롬 12:2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엡1장에서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등등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단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도 있지만 사람의 뜻과 의지도 있다.  33절에는 베드로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I will never’이라는 구절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35절에 다시 I will never가 나온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나는 반드시 결코 무엇을 하겠다 안하겠다’ 하는 말은 정말이지 믿음 생활에서 큰 시험거리가 된다.  그래서 야고보는 4:13-14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기록하며, 그렇기에 다음 절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과연 인간의 의지가 필요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39절에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42절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실 때, 주님은 당신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의지를 택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뜻(의지)을 받들기 위해 우리의 의지가 필요함을 본다.  사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는 매우 강하고 견고해야 하지만, 그 전에 인간의 의지는 십자가를 통과해야 함을 본다.

하나님의 뜻은 나에게 소망을 주신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기에 내 육신의 의지는 십자가로 보내고, 나의 의지로 하나님의 의지를 온전히 택할 때 나의 교만과 자만과 아집 그리고 패배의식은 사라지고 주님의 승리하심을 소유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주님, 많은 때에 I don’t feel like doing it이라고 푸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feeling은 없더라도 나의 의지를 굳게 해서 기도의 자리로 가게 하소서.  인간으로서 I will 혹은 I will never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단지 나의 의지로 주의 뜻을 순간 택할 수 있도록 믿음 주소서.  오늘 하루 주의 뜻이 나의 뜻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