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목사가 일등 신랑감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목사들이 욕먹는 시대가 되었다. 에스겔 33-34장을 보면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이 나타나는데, 그 순서가 파수꾼으로 시작해서 목자들, 그리고 내일 말씀에는 양들에까지 이른다. 그 순서가 중요한 것은 파수꾼은 목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목자들은 양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 파순꾼이 제대로 경고를 해 주지 않으면 목자들이 아무리 양들을 잘 먹이려고 해도 위험에 빠질 수 있고, 마찬가지로 양들이 아무리 건강히 성장하기 원해도 목자들이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양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던 목자들에 대한 심판인데, 어제 말씀을 보면 이렇게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한 양들은 삶의 기준과 의미를 잃게 되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 (33:26)’혀도 그에 대해 별 가책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타락하게 된다. 목자들이 먼저 경건함과 겸손함으로 규모있게 살며 목숨을 다해 양들을 살필 때 양들은 영적으로 힘을 얻고 건강해져서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당시 목자들은 그렇지 못했는데,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대신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했다. ‘살진 양을 잡아’라는 구절을 영번역으로 보니 ‘ye kill them that are fed’ 혹은 ‘slaughter the choice animals’ 이라고 번역했다. 즉 잘 먹이지 않은 양들 가운데도 그들 중에 자신들이 알아서 먹을 것을 찾아 먹고 살찐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만 골라 잡아 먹었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소위 ‘삯꾼 목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교회 안에 부자들이 들어오면 그들만의 비위를 맞추고 얼러내어 원하는 ‘기름과 털’을 얻는다. 하지만 정작 돌봄과 관심이 필요한 많은 양들에 대해서는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 (4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시 많은 지도자들에 대해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8절)’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불법을 행한 이들에게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마 7:23)’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같다. 결국 주님께서는 양들을 그 악한 목자들로부터 친히 구해내셔서 양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시고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고 선포하신다 (14, 15절).
신약 영번역에서 ‘목자’라는 말이 두 가지로 나오는데, 하나는 pastor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shepherd라는 말이다. pastor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엡 4:11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의 단 한 곳인데, 그 원어는 ‘포이멘’으로 다른 곳의 shepherd와 동일한 단어다. 즉 굳이 pastor라는 단어로 쓸 필요가 없는데 사용된 단어다. 그래서 그냥 shepherd라고 번역한 영번역본도 있다. 원어의 의미를 보면 ‘목사와 교사’라는 단어는 분리된 단어로 이해하기 보다는 복합어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한데, 그래서 MSG라는 영번역에서는 ‘pastor-teacher’ 라고 번역했다. 즉 목양을 하면서 가르치는 이들을 말하고, 이들은 교회에 선물로 주신 이들 즉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순서 중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shepherd라는 단어 ‘포이멘’에 대해 단순히 ‘목자’ 만을 뜻하지는 않고 ‘다스리는 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벧전 5:4에는 주님께서는 목자장이심을 말하며, ‘포이멘’이라는 단어에는 권위가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딤전 5:18에는 목자들이 그들의 사역에 대해 사례를 받는 것의 당위성을 밝힌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은 목자들이 자신의 위치와 권리를 변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받을 대상은 양들로서 주님 주신 권위 앞에 굴복해야 함을 배우기 위함이다. 말씀을 읽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적용 대상을 잘못 이해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에베소서에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함을 말씀할 때, 이 말씀을 토대로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을 요구하거나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나눔을 읽는 분들 중에는 목사님들이 계실줄 압니다. 제 아버지도 목사님이시고 동생도 목사고, 저도 전도사를 10년 이상 했습니다. 제대로 된 목회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을 알기 때문에 제가 현재 이런 글을 나눌 자격은 없지만, 영적 지도자로 있었을 때 제가 생각했던 것, 그리고 이제 와서 후회되는 것을 나눕니다. 충성되게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많은 주의 종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목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즉 이 말씀은 양들이 목자들을 비판하거나 그들에게 요구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목자들을 대상으로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8)”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마 23:10)”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6)”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원어 보스코), …내 양을 치라 (원어 포이마이네), …내 양을 먹이라 (원어 보스코) - 요 21: 15-17”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약 3:1)”
주님, 영혼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 것인지요.. 주님은 그 결과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목숨과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양들이 방황하고 넘어져 가는 것을 보고 진정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고 회개하는 목자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들을 위로하시고 능력주소서. 반면에 살진 양들을 골라 잡아먹는 악한 삯군들을 주께서 심판하실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들이 회개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소서. 아울러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히 5:12)’ 그렇지 못한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주님 비춰주셔서 성장하게 하시고, 영적 권위를 주시고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