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지존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주권은 그 분께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주도하시고 개입하시며 영광받으신다. 오늘 말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것을 회복하심을 말씀한다 (22절).
이러한 면에서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을 되새기게 되는데, 그것은 첫째로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고 (요일 5:14), 둘째는 주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며 (요 14, 15, 16), 셋째는 영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고전 14:15, 엡 6:18, 유 1:20). 그래서 사실 우리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으려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약 4:3),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목적이 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마 6:8).
주님의 회복 혹은 부흥은 인간의 노력이나 시스템에 달려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했는데, 슥 4:6에서는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 처럼, 오늘 말씀 역시 ‘새 마음과 새 영’을 약속하신다. ‘새 마음’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새 영’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경험상의 순서같다. 새 마음으로 바뀌어야 새로운 영이 오시는 경험을 하는데, 하나님 편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순서일 수 있다. 새 영이 오심으로 새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바뀌지 않고 더러운지 이것 조차 하나님의 영이 아니시면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보통 삼위의 순서는 성부 성자 성령이지만, 여러 곳에서 그 순서가 바뀌고 특히 우리에게 경험되는 순서는 성령 성자 성부 순이 된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고,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고전 12:3).
어려운 일을 당함으로 정신이 없다가 조금 나아져서 정신 차리면 과거의 행한 것들이 기억나고 얼마나 부끄러운 것들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31절을 공동번역에서는 “그제야 너희는 못된 짓을 하고 좋지 못한 일을 했던 것이 기억되어, 왜 그런 못된 짓을 하고 역겨운 짓을 했던가 싶어 얼굴을 붉히게 될 것이다.”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다만 어려운 과거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회개의 마음이 든 것이 아니라, ‘새 마음과 새 영’이 임했기에 가능하다. 아무리 어려운 과거에서 벗어나도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단지 재수 없던 과거로 인식될 뿐이다. 성령께서 나의 과거를 재조명해 주시길… 나의 자랑거리도 나의 부끄러움도 다시 비춰주심으로 온전히 회개할 수 있기를…
그제야 사람들은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 (38절)
주 예수의 이름을 오늘 높이기 원합니다. 주께서 살아계시기에 그 이름 부르기 원합니다. 오늘 새로운 날 새로운 마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