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의 히브리 원어에서 ‘마드 מְ אֹ ד’라는 단어가 네 번 나오는데, 2절에서 ‘뼈가 심히 많고’ 에서 ‘심히’, ‘아주 말랐더라’의 ‘아주’ 라는 단어로 쓰였다. 즉 ‘아주, 매우’ 등의 뜻이다. 그런데 10절 ‘극히 큰 군대더라’ 에서는 ‘마드 마드’라고 두 번 써서 ‘어마어마한’의 뜻이 된다. 2절에서는 마른 뼈들만 남은 아주 아주 형편 없는 상태지만 10절에서는 어마어마한 군대가 나타난다. 극과 극이다.
골짜기에서 도륙당했던 사람들의 마른 뼈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에스겔이 대언함으로 서로 맞아 들어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히고, 또 생기에게 대언했더니 생기가 사방으로부터 와서 그들에게 들어가서 그들이 일어나 서니 어마어마한 군대가 되었다. 이러한 부흥과 회복이 교회에 임할 수 있을까? 오늘 큐티 제목처럼 ‘말씀과 성령으로 살아남’이 필요하다.
오래 전 소위 ‘성령 집회’에 몇 번 참석했을 때 인도자가 마치 에스겔 흉내를 내어 생기를 부르는 것 같은 의식을 했었다. ‘성령이여 오소서!’ 하며 ‘성령?’을 부르고, 사람들이 쓰러지고, ‘좀 더 줄까요? You want more?’ 하며 마치 성령을 자신이 갖고 노는 것 같은, 아예 주의 영을 부리는 것 같은 행위를 했었다. 아마도 오늘 말씀에 힌트를 얻은 것 같은데, 그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대언한 것이고, 신약에서는 이러한 예를 발견할 수 없다.
고전 14: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라고 말씀하는데, 영번역에서는”And the spirits of the prophets are subject to the prophets.”라고 하며 ‘성령’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영들’이다. 즉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의 영이 그들 자신에게 제재를 받는다는 뜻이지, 성령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다는 뜻이 아니다. 주님께서도 ‘바람이 임의로 불매’라고 말씀하셨듯이, 성령은 당신의 뜻대로 운행하시고,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하며 우리가 성령을 부르고 부리는게 아니라,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주관하심을 분명히 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불러서 오라고 하지 않고, ‘주의 이름을 불러’ 즉 예수의 이름을 불러 구원 얻는다.
이러한 생기 즉 성령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고 소망이 완전히 끊긴 사람들에게 완전히 반대의 위치로 소성시키셔서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 (롬 15:13)'. 상황에 치이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이들을 해방시키셔서 아예 가공할 만한 무시무시한 전사들로 바꾸신다. 어마어마한 군사가 된다. 원수를 대적하게 하신다. 이것이 교회다!
주님, 한국 교회가 소망이 끊긴 것 같아도 주께서 시작하셨기에 주님 안에서 승리할 줄 믿습니다! 주의 영을 따라 대언할 종들을 세우시고, 넘어지지 말고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 주의 군사 되게 하소서. 미국 교회에도 부흥을 가져오시고 인간적인 노력으로의 연합이 아니라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주의 한 몸 되게 하소서. 군사는 군대로 서야하오니 함께 서는 주의 교회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