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시각 화요일 오후 3시 반, 현지 비쉬켁 오전 4시 반. 시차가 바뀌니 안그래도 피곤한데, 지난 며칠 본문과 오늘 말씀은 너무 어렵다... 번역본 5개를 보고 '쉬운 성경'을 보고 나서도 이해가 쉽지 않은 말씀이다.
우선 역사적으로 볼 때 40장 부터 나오는 성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40장 2절에는 '하나님의 이상 중에' 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꼭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오늘 말씀 역시 그 내용에 대한 교훈을 살표보고 '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13절에는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며 이 방들은 제사장들의 방이라고 기록한다.
재미있는 것은 41:7에서 성전 주위의 "두루 있는 골방은 그 층이 높아질수록 넓'아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구조적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건축되는 방식이다. 그에 비해, 이 제사장들의 방은 올라가며 좁아진다. 이것은 특이한 구조적 이유 때문이라고 밝히는데, 6절에는 "그 방은 삼층인데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위층이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즉 기둥을 만든 대신에 벽을 올라가며 좁아지게 해서 피라미드 형식으로 만들어서 기둥의 역할을 하게 하고, 동시에 '화랑'을 넓게 해서 붙어 있는 방들은 좁아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구조상 성전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 지어졌음을 알게 한다. 제사장들의 방들 역시 제사장들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사 전반의 필요를 따라 지어졌고, 이것은 결국 성소와 지성소가 건물의 핵심임을 드러나게 한다.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보이지만, 성전 자체에는 기둥이 없고 야긴과 보아스라는 현관 앞에 두 기둥만 상징적으로 존재하는데, 이 두 기둥은 구조적으로는 건물을 받드는 형식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두 기둥을 지나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간다.
이 두 기둥을 신약에서는 은혜와 진리 혹은 은혜와 평안, 혹은 천국을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는 '물과 성령으로 남 (요 3:5) 등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그것의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계 3:12에는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고 말씀하는데, 이기는 자들을 기둥으로 삼으시는 목적은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계 21:22에는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하며 궁극적으로는 성전도 사라지고 더불어 기둥들도 사라짐을 알 수 있다.
나의 삶이 겉으로 멋져 보이는 두 기둥으로만 끝나면 안된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만나며 그를 누리며, 그를 섬기는 것에 있다.
주님, 키르기즈스탄으로 올해도 보내심을 감사합니다. 기둥과 같이 여기는 동역자들과 함께 섬기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다만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오직 주 예수님이심만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늘 섬김도 주를 위해, 주에 의해, 또 주와 함께 하는 사역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