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눔에서 남편이 먼저 주를 따를 때 온전한 순종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나눴지만, 오늘 말씀 첫 구절부터 베드로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도 순종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것은 '아내들아' 라고 말한 것 처럼 아내들에게 하는 명이기에,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 이 말씀을 가지고 아내에게 순종을 요구할 수는 없다. (어차피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에) 즉 아내가 순종하지 않는 남편에게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 때문이다. 그럴 때 순종하지 않는 남편은 아내의 순종함을 보고 말씀이 참된 것임을 알게 된다.

3절은 딤전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라는 말씀과 비슷하게 여자들의 외모에 대해 말씀하는데, 요즘 시대에 순종하기 매우 어려운 말씀처럼 들린다. 믿는 여성들도 얼마나 외모에 신경을 쓰고 명품을 원하며 장신구로 치장하는지.. 이러한 풍조를 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마음에 숨은 사람'의 어떠함과 외모 치장은 반비례한다. 속이 허하면 밖을 꾸미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의 사회 생활이 더 활발하게 된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치장은 에티켓이 되었는데, 베드로는 지금 '마음에 숨은 사람'의 중요함을 말씀하기 위하여 상대적인 외모 치장을 언급하는 것 같다.

아내에게 있어 이 '마음에 숨은 사람'은 남편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 말씀으로 여성을 억압해서는 안되지만 말씀을 떠나 너무 여성의 위치와 본분을 잊게 하는 것도 문제다. 6절에는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여성은 하나님의 딸이 된다고 말씀한다. 여성의 구원에 대해 성경에는 좀 편협하게 들리는 것 같은 구절들이 있는데, 남자나 여자나 모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분명하지만, 위의 딤전 같은 장 15절에는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보다는 여성들의 위치와 본분이 중요함을 말씀하는 것이다.

1절에서 6절까지의 아내에 대한 말씀에 비해 남편들에게 하는 말씀은 7절 하나로 끝난다. 그래서 좀 편협하게 보일 수 있지만, 아마도 여자들에 비해 기질적으로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남편들에게 기억하기 쉽도록 권하는 말씀일지도 모른다. (ㅎㅎ)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김'을 말씀하는데, '지식'이라는 단어는 '그노시스'로 이는 '공부'와 관계가 있다. 개인적으로도 결혼 생활에서 부부의 관계나 부모로의 역할은 그냥 깨달아지고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남편은 순종하는 아내가 있다고 만족하지 말고 남자 역시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

또 '귀히 여김'을 말씀하는데, 많은 경우 결혼 생활에서 아내가 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것에 대해 귀히 여기고 또 아내 자체를 귀히 여긴다면 얼마나 귀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이라고 번역됐지만 원어의 시제는 현재이다.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는'이 맞다. 나중에 받을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에서 이 은혜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8절에서는 아직 3장인데 벌써 '마지막으로'라는 말을 하는데, 그만큼 8절 이하 말씀이 중요하다는 뜻인 것 같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하는 부분은 모두 하나 씩의 단어를 열거하는데, '호모쁘로네스 (같은 기질)' '쑴파떼이스 ('함께한 마음' 영어 sympathy 어원)' '삘라델뽀이 (형제사랑)' '유스플라그크노이 (강한 혹은 좋은 창자, 부드러운 마음)' '삘로쁘로네스 (앞의 호모쁘로네스에서 쁘로네스 '기질'은 동일, 기질을 사랑함, 즉 다른 이들의 어떠함을 받아들이는, 겸손)'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9절의 '복을 빌라 (율로군테스)'로 연결된다.

율로군테스는 율로게오가 원형인데, '' '좋다' '로게오' '로고스'이다. 즉 좋은 말씀이다. 서로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바로 복을 비는 것인데, 바로 복음으로 화답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말해내는 것이다. 비판을 그치고 말씀으로 서로 복을 비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그럼으로 나는 단순히 축복의 '통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줄기, 그리고 주님의 뻗어나감이 된다.

주님, 주께서 부부 사이에 복이 되시기 원합니다. 많은 세월 서로 상처주고 오해하던 것들에 대해, 또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것을 주님의 마음으로 새롭게 보게 하시고, 우리의 말이 서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처럼 귀하게 좋은 말씀으로 바뀌게 하소서. 정말 복으로서, 복덩이로서 오늘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