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과 더불어 4장은 '고난'이라는 단어와 '육체' 그리고 '영' 등의 단어가 눈에 띤다. 1절에서 시제가 좀 독특한데,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갑옷을 삼으라' '육체의 고난을 받은' 등의 동사는 모두 아오리스트이지만, '죄를 그쳤'다 의 동사는 과거 완료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섞여 있는 동사의 번역이 쉽지 않기에 한글번역에서는 모두 과거로, 영어 번역에서는 현재 완료 등으로 번역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고난의 시제'는 이미 모두 끝난 것으로 들리지 않게 썼다. 다만 죄를 그친 것에 대해서는 과거 완료가 되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고난은 아마도 평생을 함께 한다는 뜻인 것 같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편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며 고난은 삶을 통해 항상 체험된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과 고통의 유익은 그로 인해 '죄를 그쳤'던 것이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편해지면 영적으로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많은 면에서 유혹을 받는다. 3절에 나오는 죄들의 목록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 중 '음란 (아셀게이아), 술취함, 방탕, 향락' 등 많은 단어가 '넘치다'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너무 넘치면 죄(하마르티아)로 인도한다. 오직 우리에게 넘칠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 밖에는 없다.
어제 3장 19절에는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고 말씀하며, '옥'에 갇힌 영들에 대해 말씀하는데, 이 '옥'은 성경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감옥'의 뜻으로 쓰였지만, 계시록 18:2에서는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라고 하며 '모이는 곳'으로 번역 되었다. 오늘 말씀 4장 6절에서는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다시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이것은 마치 살아생전 주님을 믿지 못했지만 그래도 죽은 후에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물론 믿지 않고 죽은 이들에 대해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개신교 입장에서는 수용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시제와 인칭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6절을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면, '대게 이를 위해(이 목적이 중요!) 죽은자들(복수)에게 복음이 전해졌으니 (수동 아오리스트 단수) 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육체(사르크)에 대해서는 심판들을 받지만 (수동 아오리스트 복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영에 대해 살아있게 (현재형 복수) 하려 하심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제와 인칭이 중요한 이유는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죽고 나서 복음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 이들은 살아있을 때 각자 개인적으로 (수동 아오리스트 단수) 복음을 듣고 받은 이들이다. 하지만 육신적으로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지금 살아있는데, 영에 대해서 그렇다.
이 말씀은 놀라운 말씀인데, 요 11:25-2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기록한 것을 뒷바침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확신을 주는 말씀이 된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가 죽지 아니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분명 믿는 이들도 육신의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즉 사람의 입장에서는 누구든 한번 죽어 장사된다. 하지만 죽은 그들도 영에 대해서는 지금 하나님 앞에 살아있다. 할렐루야!!
이렇게 이해하고 보니 어제 3:19절의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됐다는 말씀은 복음의 선포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승리, 십자가의 승리의 선포이고, 그 대상은 계시록 말씀과 같이 '더러운 영들'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베드로는 7절에서 결론적으로 '그러나'로 시작해서 이미 구원받은 이들, 살아있는 이들, 죽은 이들 등에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 기도의 열매로 '뜨겁게 서로 사랑함' '서로 대접함'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섬기라' 고 권면한다. 더 나아가 11절에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라고 말씀 하는데, 이것은 그렇게 하는 체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섬김의 근원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일깨워준다.
주님, 저의 육신은 언젠가 죽고 없어질 것을 압니다. 하지만 영은 살아있게 되고, 주님의 부활처럼 전혀 새로운 몸을 입을 것을 압니다. 이러한 믿음을 더 새롭게 하시고 나의 능력이나 힘이나 재량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힘과 능력에 주목하고, 범사에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