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비유는 꽤 구체적이다. 그냥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세를 주고 멀리 떠났다'라고 간단히 말씀하면 될텐데 (사실 눅 20:9는 이렇게 간단하게 기록한다), 1절은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울타리를 두르고 포도즙 짜는 틀 놓을 곳을 파고 망대를 세우고 농부들에게 그것을 세주고 멀리 떠나다' 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신다. 이것은 다분히 포도원을 세운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말하는데, 2절은 '때(가 되자) 농부들로부터 포도원의 열매를 받으려고 농부들에게 한 종을 보내다 (원어 참조)' 즉 '열매를 받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열매'는 단수이고, '농부들로부터'의 '부터'는 '에크 (밖으로)'를 쓸 수도 있었지만 '파라' 즉 '~로부터'의 의미는 물론 '옆에' 혹은 '함께'의 의미가 있는 단어를 쓴 것이다. 이 포도원을 만든 사람은 농부들에게 세를 주었지만 거기서 나는 모든 열매를 원한 것이 아니라 단수의 열매 즉 개정역 처럼 '소출 얼마'를 받기 원했고, 더우기 공간적으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그 포도원의 법적 소유주로서 항상 '파라' 즉 옆에 있었다.
신약에서 많은 경우 특히 '때'와 관련해서 '열매'는 단수지만, 복수로 쓰인 경우도 적지 않아서 22번 정도 나오는데, 예를 들어 딤후 2:6은 '수고하는 그 농부가 먼저 열매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원어 참조)' 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 즉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실 때 단지 그 열매 중 얼마를 원하시고 나머지는 그 백성들이 열심히 일하고 섬김으로 많은 누림과 기쁨을 얻기 원하셨지만 농부들은 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의 왕국이 아닌 자신들의 세속적인 국가로 만들기 원했고, 따라서 보냄 받았던 모세를 비롯한 모든 선지자들을 반대하거나 죽였던 것은 물론이고 침례자 요한도 죽임을 당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랑스러운 (아가페) '사람의 아들'이신 주님까지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밖으로 던져 버렸다.
이스라엘, 특히 당시 권력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하신 말씀이고 결국 주후 70년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해서 2천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 실체를 찾기 어려울 만큼 유리하는 백성들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교회 시대에 교회들 역시 주님을 거부하고 그 주되심을 무시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스라엘 역시 회복되었지만 정치적인 회복 뿐이고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전 13:4는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하는데, 정말이지 아가페이신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신다. 하지만 영원히 참지는 않으실 것이다. 눅 20:18에는 '모퉁이의 머리(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경고하시기 때문이다.
주님, 며칠 동안 계속 비가오며 노아의 때를 생각합니다. 노아의 증거가 수십년 동안 계속됐음에도 그 어느 누구도 듣지 않다가 모두 죽임을 당했음을 압니다. 믿음 주소서.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안으로 더 역사하소서.
페북:
며칠 동안 계속 비가 오는 것을 보면서 노아의 때를 생각합니다. 노아의 증거가 수십년 동안 계속됐음에도 그 어느 누구도 듣지 않다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아가페는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는 않으십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멸망당했던 것 처럼, 이제 교회가 주님을 거부하고 그 주되심을 무시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주께서 온전히 주인되시도록 우리의 위치를 다시 한번 보기 원합니다. (막 1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