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개역개정’과 ‘킹제임스흠정역’ 그리고 ‘우리말 성경’ 등을 비교하면 말씀을 읽고 있다. 물론 두 가지 원본도 함께 읽고 있는데, 개역성경이 아직도 내 생각에 깊이 자리하고 있고 그래서 정이 가지만 정확도는 조금 떨어지는 번역본이라면, 킹제임스흠정역은 그 정확도가 탁월하고, 최근에 종종 보게되는 ‘우리말 성경’은 두란노에서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대적 어체라든가 어감 및 존대 사용은 물론 그 번역의 정확도 역시 꽤 훌륭한 것 같다.
이러한 번역본들과 원어 사본들을 비교해 보며 새롭게 발견한 것은 3절인데, 새끼 나귀를 데려오는 내용은 공관 복음에 모두 등장하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단지 ‘주께서 필요하시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내리라 (마태복음)’ 정도의 내용이다. 하지만 오늘 말씀 3절은 원어 사본에 따라 해석을 조금씩 다르게 할 수 있는데, ‘우리말 성경’역은 ‘만약 누가 ‘왜 이러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필요하시니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고 하라’로 번역했다. 그 이유는 원어에 따라 ‘다시, 도로, 한번 더, 한편으로’ 등을 의미하는 ‘πάλιν’ 이라는 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어린 나귀)의 그 주인이 필요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즉시 그것을 (그가) 여기에 보낼 것이다’로 번역할 수 있는데, ‘보낼 것이다’는 3인칭 미래형으로 ‘그’가 주님이신지 아니면 마을에서 만나게될 사람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팔린’이 있으면 ‘주님께서 돌려 보내실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또한 사람을 섬기로 오신 주님을 증거하기 때문에 ‘즉시’라는 말이 많이 쓰였고, 다른 복음서에 비해 이 어린 나귀에 대해 ‘주인’이시라고 기록되었지만, 단지 필요하다고 마음대로 쓰시지 않고 (쓴 후에) 즉시 돌려 보내시겠다는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믿음을 통한 그의 은혜로 구원하셨기에 이제는 주님의 온전한 공로로 분명히 더 이상 죄인일 수 없다. 주님을 믿어도 역시 죄인이라면 왜 주님을 믿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옛 죄인이었던 것을 잊지 말고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벧전 5:8).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그러한 것이고, 그러한 큰 은혜를 소홀히 여기면 보응을 피할 수 없고 (히 2:3), 혹시라도 배교한다면 더 이상 회개할 수도 없고 심판만을 기다리게 된다 (히 6:4-6).
유 1:6은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기록하는데, 마귀 혹은 사탄은 원래 천사장이었고 그를 따르는 많은 천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주께서 주신 ‘자기 처소’ 즉 자신들에게 맡겨진 위치를 떠날 때 하나님을 거스르는 마귀가 되었다. 천사들이 이러한데 주님의 은혜로 높아진 소위 ‘주의 종’들은 그 원래 종으로 부르심 받을 때를 항상 기억하며 겸손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종된 위치 그 종됨 자체의 영광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 어린 나귀는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기뻐 부르는 것에 대해 자기를 높이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예루살렘 입성이 끝나자 곧바로 자기의 원 위치로 되돌아갔다.
주님, 50이 넘었지만 아직도 종종 쓴 것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지 않는 저의 훈련되지 않은 모습을 봅니다. 주께서 회복해 주신 저의 위치를 제가 힘써 지키며, 주의 종들은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주의 은혜임을 알고 자신들 위에 주께서 계심을 자각함으로 겸손하게 하시고, 또한 교회는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으로 항상 돌아가게 하소서.
페북 나눔:
그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말 성경’역은 3절을 ‘만약 누가 ‘왜 이러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필요하시니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고 하라’로 번역했는데, 원어 사본에 따라 ‘다시, 도로, 한번 더, 한편으로’ 등을 의미하는 ‘πάλιν’ 이라는 말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원 위치를 지키지 않았던 천사들이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던 것 처럼, 주의 종들은 들어 쓰임 받을 때 더욱 근신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이 어린 나귀는 사람들의 환호가 자기를 높이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예루살렘 입성이 끝나자 곧바로 자기의 위치로 되돌아갔습니다. 주께서 회복해 주신 위치를 잃지 않고, 주의 종들은 그 위치가 주의 은혜로 비롯됐고 자신들 위에는 주께서 계심을 항상 기억함으로 섬기며, 또한 교회는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막 1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