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냐 하나님이냐 혹은 노력이냐 상속이냐는 문제는 창세기 가인과 아벨 때 부터 시작된 실존적인 문제이다.  아벨은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음식으로 쓸 수도 없는 양들을 쳤는데, 그는 가인 처럼 재물 혹은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던 의인의 견본이었다

 

영어 good좋다혹은 선하다라고 번역하지만, 이제까지 좋다라는 말은 칼로스 (이상적이다)’인 반면, 17절의 선하신의 원어는 아가또스즉 그 자체가 온전히 선하다는 의미다이 단어는 좋은 은사 ( 7:11), 좋은 나무 ( 7:17), 선한 사람 ( 12:35)’ 등등 신약에서 102번이나 나오지만, 오늘 말씀에는 유독 하나님만 선하시다 라고 주님은 말씀한다마치 이 사람에게 너는 나를 선하다고 부르는데, 그러면 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냐?’라고 말씀하시는 것 처럼 들린다.

 

이 사람은 ‘무엇을 (내가)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데, 개정역에는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되어 있지만, 원어는 얻다 (ㄹ람바노)’가 아니라 상속받다 (클레로노메오)’인데, 3:15-16얻다역시 원어로는 소유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이다흥미로운 것은 그가 재물이 많은사람이었는데, 보통 재물은 유산 상속 아니면 자수성가를 통해 축적된다그가 어떻게 재물이 많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상속이라는 말에는 분명 자신의 힘이 아닌 유산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는데도 그는 무엇을 하여야라고 묻는다.  ‘유산 (클레로스)’노모스 ()’의 합성어인 상속에는 해야 할것이 없다다만 그 아들로 태어나거나 입양을 통함으로만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기본적인 명령들을 행했냐고 물으시자 그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답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독 마가복음에만 속여 빼앗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치부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 속여 빼앗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그의 답을 보면 아마도 그는 재물을 상속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의 대답에 주님은 그를 바라보시며 사랑하셨는데, 그냥 한국어로 읽으면 율법에 대한 그의 헌신적인 삶에 주님께서 감동하신 것으로 생각되지만, 여기의 사랑은 아가파오로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긍휼이 가득한 사랑이다.

 

21절은 사본에 따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가 있다주님께서는 이 사람의 무엇을 하여야라는 질문에 가서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혹독하게 답하신다문제는 여기에 영원한 생명은 없고 단지 하늘 안의 보고 (보물상자)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미래형)’라는 말씀 뿐이다.

 

23절에 주님께서는 재물들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게 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데, 불가능이 아니라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시며, 다시 24절은 원본에 의하면 재물들 위에 의지한 이들 (완료형)’은 매우 어렵다고 설명하신다즉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소유한 재물들을 의지한 이들은 마음이 굳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그 왕국에 들어가기 역시 매우 어렵다.

 

제자들은 이 말에 너무 놀라서 이 문제를 ‘구원과 결부시키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는 묘한 말씀을 하고 계신다 (현재 진행형).  여기 에게는‘to’‘for’가 아니라 원어로 함께 옆에서 ~로 부터를 의미하는 파라 beside’이다.   즉 이 구원의 문제 역시 소위 ‘(앞으로) 천당가는문제를 떠나 기본적으로 재물을 의지하는 것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인데, 이러한 변화가 인간 자체에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그 옆에 또 그로 부터는가능해서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베드로의 질문에 주님은 주님고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자는 (아오리스트)’ ‘이 시간 (카이로)에 박해를 겸하여 백 배를, 또 오고 있는 (현재형) 시대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는 (아오리스트)’다고 답하신다이것은 잠 10: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는 말씀이나 세상의 치부와도 다른데, 박해 디오그모스는 신약에 10번 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로 45번 등장하는 환란과 비교해서 공동체와 관련있는 말로 생각된다즉 여기 백 배에 대한 말씀 역시 나 자신이 나만을 위해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받는 (혹은 취하는)’ ‘공동재산 (commonwealth 혹은 시민권)’을 의미한다고 본다그만큼 주님의 몸인 교회는 공동체로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

 

주님, 저는 별 소유도 많지 않지만 많은 때 주님 보다는 저의 소유를 의지함을 고백합니다저의 힘을 빼기 원합니다주님 옆에 주님과 함께 주님을 의지함을 더 배우기 원합니다.

 

페북 나눔:

돈이냐 하나님이냐 혹은 노력이냐 상속이냐는 문제는 창세기 가인과 아벨 때 부터 시작된 실존적인 문제입니다.  아벨은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음식으로 쓸 수도 없는 양들을 쳤는데, 그는 가인 처럼 재물 혹은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던 의인의 견본이었습니다

 

이 재물이 많은 사람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 받을 수 있습니까?’ 라는 잘못된 질문으로 시작하는데, 상속은 무엇을 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집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입양됨으로 가능합니다.

 

부자의 문제는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원어로는 ‘재물들 위에 의지함  (완료형)’ 입니다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는 묘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현재 진행형), 여기 ‘에게는’은 ‘to’나 ‘for’가 아니라 원어로 ‘함께 옆에서 ~로 부터’를 의미하는 ‘파라 beside’ 입니다.   즉 이 구원의 문제로 이해한 제자들의 질문 역시 소위 ‘(앞으로) 천당가는’ 문제를 떠나 기본적으로 재물을 의지하는 것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인데, 이러한 변화가 인간 자체로 부터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그 옆에 또 그로 부터는’ 가능해서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이것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구원입니다.  ( 10: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