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에서는 어제 본문을 9:1까지로 했다. 아마도 1절 내용에 대한 해석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38절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라는 부분 때문에 1절을 포함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성경을 장절로 편집했던 사람의 의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1절이 주님의 재림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당시 주님 말씀하신 몇명은 아직도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신약의 많은 경우 ‘kai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또한 등등)’로 시작하는 문장은 앞의 문장을 연결시킬 때도 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시작하는 의미도 있는데, 1절 역시 kai로 시작하고 이것은 전혀 다른 내용의 시작을 의미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음을 맛보기 전에 하나님의 왕국이 권능 있게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더러 있느니라 (킹제임스흠정역)’고 하는데, 바로 후에 2절 역시 kai로 시작하며 소위 ‘변화산’ 내용으로 이어진다. 즉 이는 주님의 재림이 아니라, 바로 이 ‘변화산’의 사건이 ‘하나님의 왕국이 권능 있게 임한 (원어, 완료형. 미래형이 아님) 것’이었다. 승천했던 엘리야와 죽었던 모세가 나타나서 주님과 얘기를 했는데, 베드로는 그 셋을 위해 장막 셋을 짓자고 말한다. 베드로 역시 주의 왕국은 정치적 세력으로 임할 것으로 기대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자 모든 것을 잊고 그런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두려워’했는데, 하나님의 왕국이 ‘능력으로 임’했기 (완료형) 때문이고, 이러한 경험은 그들을 ‘하늘’에 있게 했다.
구름이 그들을 덮고 그들이 들은 소리는 모세나 엘리야가 아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었다. (‘사랑하는’은 ‘아가페토스’이고 ‘들으라’는 현재진행형)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왕국이 능력으로 임한 것을 경험한 이들에게 한 말씀은 모세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닌 그 사랑하시는 아들을 들으라 하는 것이었다. 8절은 문득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개정역)’고 하는데, 원어에서는 ‘그들과 함께한 예수 외에는 보지 않다 (능동태 아오리스트)’로 되어 있다. 모세나 엘리야는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 오히려 고발할 것이다 (요 5:45). 예수님 외에는 없다. 또한 그 분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회개합니다. 율법이나 선지자는 물론이고 내 마음이나 생각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영이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페북 나눔:
오직 주님만이 왕이시며 왕국이시니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1절은 주님의 재림이 아니라 ‘이미 임한 (완료형) 왕국’ 즉 2절 이하 변화산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세도 엘리야도 즉 율법이나 선지자는 물론이고 우리 내면이나 마음 혹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는 그 영 (고후 3:17)’이십니다. (막 9: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