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병소(少)어 기적이다. 물고기 숫자는 원어로 '조금 (두어 마리 7절)'을 의미하는 '올리가'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少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오병이어 기적의 '광주리'는 '코삐노스 κόφινος'로 영어의 coffin 혹은 coffer 즉 어떤 바구니나 궤짝을 의미하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것에 비해, 여기는 '스푸리스'로 행 9:25에서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 온 것에도 언급된 말이다. 갈대로 엮어 만든 것일 수도 있고, 나무로 만들었을 수도 있는데, 아마도 크기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물고기 역시 오병이어의 익숙한 단어 '익뚜스'가 아니라 '익뚜디온'으로 사이즈가 '작은 물고기'를 뜻한다. 오병이어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나오지만, 이 칠병소어의 사건은 마태복음과 더불어 여기에만 나온다.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마태복음과 더불어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마가복음에 이 이방인들에 대한 기적이 모두 기록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이 기적은 단순히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 되는데, 이러한 표적이 풍성함에도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구했다. 그들은 다른 표적, 그들이 원하는 표적만을 구했기 때문이다.
오병이어 기적은 유대인들 5천을 먹이고 열두 코삐노스를 남겼지만, 칠병소어 기적은 이방인 4천을 먹이고 일곱 스푸리스를 남겼다. 얼핏보면 유대인들의 숫자도 많고 남은 광주리도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는 눅 9:14의 기록과 여기의 '먹다'가 남성 복수형 동사이기 때문에 둘 다 '남자들' 숫자만 기록한 것을 가만할 때, 여자들과 아이들의 숫자를 포함하며 엇비슷했을 수 있다. 더우기 바울이 타고 내려온 광주리와 동일한 '스푸리스'라는 단어를 놓고 보면, 아마도 숫자적으로는 일곱이지만 양적으로는 12에 비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의견이다)
롬 3:22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또 10:12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그리고 골 3:11은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기록하는데, 하나님의 경륜과 그 의는 유대인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만유를 어우르시는 차별 없는 은혜이다.
주님, 오늘도 주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배부르기 원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채움받기 보다는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없는 주님의 풍성한 은혜로 채워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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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와 그 은혜는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없습니다 (롬 3:22, 10:12, 골 3:11). 오병이어와 더불어 칠병소어(원어 올리가, 두어 마리)의 기적은 얼핏보면 유대인들이 더 많이 받고 누린 것 같지만, '광주리'로 번역된 단어가 행 9:25에서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 온 '스푸리스'임을 볼 때, 그리고 '남자들'만 계수된 것을 가만할 때 그 숫자는 달라도 양은 엇비슷했을 수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그 의는 유대인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만유를 어우르시는 차별 없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보이시는 표적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풍성한 은혜로 배부르기 원합니다. (막 8: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