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절까지는 마 15:21-28에도 기록된 말씀인데, 거기에는 '가나안 여자'라고 나오지만 7:26은 '헬라권 영향 아래의 수로보니게 (시리아, 페네시아) 여인'이라고 한다. 이 여자가 주님의 소문을 듣고 '부정한 영에 (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주님께 와 엎드려 구하는데, 마 15:22은 그녀가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음을 기록한다. 이것은 그녀에게는 잘못된 호칭으로, 이러한 호칭은 오직 유대인 혹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해당한다. 주님께서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 (마 15:23)'자 그 여인은 호칭을 '주여'로 바꾼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 15:26)'고 답하시는데, 여기 마가복음에서는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즉 '자녀로 먼저 (프로톤)'라는 조건을 말씀하신다. 이방인들을 개들 취급 하시듯 말씀 하셨지만, 그녀에게는 소망이 비췄다.
이것을 눈치채고 그녀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답한다. '상 아래 개들이라도 주인들의 아이들과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까?' 라는 답이다. 그녀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줄 알았다. 하나님의 경륜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요 4:22)'는 것인데, 주님 당신도 역시 유대인이셨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이방인들에게는 차별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다시 말해 주님의 경륜이다. 주님의 치유와 구원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해서 이방인들도 주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길 수 있도록 즉 주님 안에서 주님과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 마가복음에는 없지만 마 15:28에는 '여자여 너의 믿음이 크도다'라는 말이 있는데, 원어의 호격은 '오 구나이!' 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우리 번역처럼 그냥 '여자여'가 아니라, 존칭의 의미로서 '부인이시여'라는 의미에 가깝다. 주님께서는 '개들'로 먼저 언급은 하셨지만,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셨던 '여자여 (요 2:4)'와 동일한 말을 하신다. 그녀는 주님과의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32절 이하의 내용에는 다이몬 혹은 더러운 영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는 무언가 막힌 것이 있었다. 이 사람에 대한 주님의 치유는 독특했는데,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셨다. 여기 '침을 뱉다'라는 말은 주님이 잡히신 후 사람들이 모욕적으로 침을 뱉었다는 단어 '엠프투오'와는 다른 단어로 '엔'이 없는 그냥 '프투오'이다. 그냥 안수만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침을 이 불쌍한 사람에게 뱉으셨는데, 이것은 특별한 일이다. 이러한 치유 사역은 다음 8장과 더불어 요9:6에만 나온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입으로 음식을 으깨어 아기에게 주듯, 주님은 그 무엇인가 막혔던 환자에게 자신의 어떠한 것을 주신 것이다.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주님께서 '탄식하셨다'는 기록은 여기에만 있는데, 비슷한 예로 성경에서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 (요 11:35)'신 것 역시 단 한번이다. 그 이유는 (많은 해석이 있지만) 아마도 33절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사로는 죽었지만 자신들도 언젠가는 죽어 썩어질 것을 알지 못하고 함께 우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 주님께서는 통분하시며 불쌍히 여기셨던 것이다. 인간의 실존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깊은 연민이다. 그래서 귀는 있지만 들을 수 없고 입은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이 사람 역시 주님 없이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대표하며, 주님께서는 이러한 인생에 대해 탄식하셨다. 하지만 주님은 그에게 오셔서 관계를 맺으신다.
주님, 주께서 오셔서 나를 맞지시고 사랑한다 말씀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영이신 주님께서 오늘도 더 깊이 저와 함께 하시기 원합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시고 막힌 그 어떤 것이라도 명하셔서 뚫려지고 풀려지게 하옵소서. 들을 귀가 있게 하시고, 고백하며 선포하고 감사할 수 있는 입이 있게 하소서. 주님 고맙습니다.
페북 나눔:
주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우선 입니다. 마 15장은 이 여인이 주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가 다음에는 그냥 '주여'로 불렀던 것을 기록합니다. 주님께서는 여기 27절은 '먼저'라고 말씀하시며 이 여인에게 소망을 주시는데, 그녀가 '상 아래 개들이라도 주인들의 아이들과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까?' 라는 의미로 답하자 이에 주님은 그의 딸이 고침 받았다고 하신 것은 물론이고 그녀를 '오 여자여 (헬 '오 구나이' 원의미는 '오, 부인이여' 어머니 마리아를 부르셨던 것과 동일)'라고 부르십니다. 그녀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줄 알았습니다.
32절 이하 귀는 있지만 들을 수 없고 입은 있지만 말은 어눌했던 이 사람은 주님 없이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대표하는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인생의 실존에 대해 탄식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에게 침을 뱉으시며 치유하시는데, 마치 어머니가 아기에게 음식을 입으로 으깨어 주는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관계를 맺으십니다. 우리의 막힌 귀를 열어 주셔서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우리의 입을 열어 고백하며 선포하고 감사할 수 있게 하십니다. (막 7:2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