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4장과 더불어 물 위를 걸으신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먼저 49절 ‘유령’이라는 번역은 한글 킹제임스에서 ‘영’으로 번역된 것 보다 정확한데, 원어는 ‘빤타즈마 φάντασμα’로 어원은 ‘빤타조 (나타나게 하다)’이며 무언가 형형하는 혹은 헛것이라는 의미이다. 항해 중 무언가 헛것이 나타나는 것은 고대에서 매우 불안히 여겨지는 나쁜 징조로 여겼을 것이다. 개정역이 여기에서는 더 낫게 번역했다. 영 (프뉴마)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48절은 주님께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다’라고 했는데, ‘보다’의 원어는 ‘에이도’로 기본적 의미는 ‘(눈으로) 보다’지만, 우리 말 처럼 ‘맛을 보다, 낌새를 보다’ 등 ‘알다, 눈치채다, 경험하다, 이해하다’ 등 여러 의미가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멀리 뭍에서도 제자들이 힘들게 노를 젓는 것을 아셨다. 49절은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라며 역시 같은 단어가 나오지만, 이번에는 주님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바다 위’를 걸으셨는데, 물리적인 바다도 있지만 상징적 의미는 대게 이방 혹은 세상 혹은 심판 등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주님은 중력을 거스려 바다 위 즉 모든 부정적인 것을 초월해서 유유히 걸으셨는데, 이는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의 위엄과 권위를 보여준다. 배는 물위에 뜨지만, 풍랑이 심하면 배가 위험해진다. 하지만 주님께서 배로 들어오시자 이내 바람이 멈춘다. 배 자체도 중요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심이 더 필요하다. 주님 없는 교회는 이 세상에서 구원을 베풀 수 없고, 그 자체가 풍랑 속에 깨어질 수 있다.
56절은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고 기록하는데, ‘성함을 얻다’는 원어로 ‘쏘조 σῴζω’ 즉 ‘구원하다’의 의미다. 여기에서 형태는 ‘미완료 수동태 3인칭 복수형’으로 ‘그들이 구원을 얻었었다’로 번역할 수 있다. 주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데, 그들은 믿음으로 주님께 왔고 또 주님을 만졌다. 구원은 단지 지옥 신세 면하고 천당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회복된 관계이다.
주님께서는 병을 고치실 때는 ‘안수’도 하셨지만 ‘만지시’기도 하셨는데 (마 8:15, 20:34), 여기서는 병자들이 주님을 만졌다. 원어 ‘합토마이ἅπτομαι’로 모두 동일한데, 이 단어는 그냥 무심코 만진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 함께 하는 동작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님께서 만지셨을 때도, 또 병자들이 주님을 만졌을 때도, 그 태는 능동이나 수동이 아니라 중간태이고, 더우기 주님께서 만지실 때는 소위 ‘이태동사’형으로 쓰였는데, 이것은 누가 만지든 만지는 이와 그 대상에 어떠한 하나됨과 합의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주님께서는 부활 후 아버지를 먼저 만나기 전에는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 (원어는 ‘합토마이’로 동일, 요 20:17)’고 하신 것 외에 그 누구도 자신을 만지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 왕이신 주님께서는 소위 ‘스타’나 ‘아이돌’이 아니셨는데, 그는 원하시는 자 누구든 만지셨고, 또 만져지셨다. 이런 왕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주님을 만짐으로 그와 하나되며 구원을 누린다.
주님, 영이신 주님을 만지기 원하며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기 원합니다. 나의 못된 마음과 생각을 만져 주소서. 주님을 믿음으로 죄들을 사함받고 온전히 의롭게 되었지만, 나의 생각은 아직도 변화가 느립니다. 오직 주님의 만져주심을 바랍니다. 오늘도 비가 온 세상을 적시듯이 성령께서 우리를 적셔주시고 만져주소서. 주님 고맙습니다.
페북 나눔:
구원은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거나 우리가 주님을 만질 때 일어납니다. 구원은 단지 지옥 신세 면하고 천당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왕이신 주님께서는 소위 ‘스타’나 ‘아이돌’이 아닌, 누구든 만지셨고, 또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만지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왕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짐으로 그 분과 하나되며 구원을 누립니다.
주님, 나의 못된 마음과 생각을 만져 주소서. 주님을 믿음으로 죄들을 사함받아 온전히 의롭게 되었지만, 나의 생각은 아직도 변화가 느립니다. 오직 주님의 만져주심을 바랍니다. 오늘도 비가 온 세상을 적시듯이 성령께서 우리를 적셔주시고 만져주소서. 주님 고맙습니다. (막 6:4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