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 즉 보냄을 받은 자들이 돌아와서 주님께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자 주님께서는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신다. 눅10:17에는 70인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기뻐했는데, 아마도 여기 제자들 역시 육체적으로는 조금 힘들어도 '낱낱이 고'한 것을 보면 매우 흥분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쉬라고 하신다. 보냄을 받은 자들의 필요를 주님께서는 아셨는데, 주님 역시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갈 4:4). 주님께서 '종'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기록한 마가복음은 그가 다른 '종들'의 입장과 필요를 아셨음을 말해준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다른 이들의 상황과 입장에 대해 공감하는 분이셨는데,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던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 그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제쳐두고 주님을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시작된 소위 '해방신학'에서는 이들을 '민중'으로 취급한다. 즉 아무런 할 일도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노숙자 비슷한 이들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라거나 '현재 왕은 무능하고 포악하니 뒤집어 엎고 새 나라를 세우자'라는 등의 선동을 하지 않으시고 단지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 목자 없는 양같은 이 가련한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며 생명을 주어 소망을 품어 그들을 내면으로부터 해방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날이 저문다. 그러고 보니 오병이어의 기적은 보통 그림이나 영화에서 처럼 밝은 한낮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두어질 때 시작한다. 이 남자만 오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은 어두어질 때까지 왜 들에 남아있었을까? 정말 주님의 말씀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말씀을 듣다 보니 금방 어두어졌을까? 다시 말해 그들은 '목자 없는 양 같'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 (요 6:26)'에 주님을 따랐음이 밝혀진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육신의 양식 이전에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말씀이 먼저이고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것도 말씀을 위해서다. 구제 사역은 필요하지만, 거기에 말씀이 빠진다면 오히려 사람들을 빌어먹기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버린다. 말씀이 우선이고 목적이다. 주님은 말씀이시고 또 말씀으로 오셨다.
주님,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영이고 주님의 말씀이 영이며 생명임을 압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으로 우리를 살려 주시고, 생명을 더 얻고 풍성히 얻으며 누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이 없어 여러 가지 메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주의 종들을 오늘도 보내셔서 주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소서. 주의 생명으로 풍성히 채우소서.
페북 나눔:
말씀이 우선이고 목적입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아무런 할 일도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 라거나 '현재 왕은 무능하고 포악하니 뒤집어 엎고 새 나라를 세우자' 라는 등의 선동을 하지 않으시고 단지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련한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생명을 주며 소망을 품게 하여 그들을 내면으로부터 해방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제 사역은 필요하지만, 거기에 말씀이 빠진다면 오히려 사람들을 빌어먹기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영이고, 주님의 말씀이 바로 영이며 생명입니다. (막 6:30-44)